이미지 크게보기시위나선 의사들 17일 오전 종로구 서울대 의대 융합관 안윤선홀에서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무기한 휴진을 알리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윤성호 기자

■ 서울대병원 무기한 휴진 돌입

“갑상선암 남편 아파하는데
진료예약 7월 연기 통보받아
의사들이 앞장서 불안 조장”

“휴진불참 천륜 저버리는 일”
일부 교수, 황당 주장하기도

의대 증원에 반발한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집단휴진에 돌입한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본원과 분당서울대병원·보라매병원에선 진료·수술 등 일정이 미뤄진 환자들이 애를 태우며 발만 동동 굴렀다. 교수 측은 중증·희귀질환자 진료는 이어가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선 암 환자 등 중환자들도 예약 연기 통보를 받았다며 불안해했다. 간호사와 일반 직원들이 진료 일정 변경 업무를 거부하고 나서자 일부 교수들이 전임의(펠로)들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상황도 관찰됐다.

이날 오전 취재진이 찾은 서울대병원 암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교수들은 폐암·위암·혈액암 등 진료과마다 한두 명에 불과했다. 특히 갑상선암센터에는 진료를 보는 교수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갑상선암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의 보호자 A 씨는 “지난 14일에 오늘 예약이 7월로 미뤄진다고 전화를 받았는데, 남편이 너무 아파해서 하루라도 늦어지면 안 될 것 같아 무작정 왔다”며 “간호사들도 일단 기다려보자고 해서 교수님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환자는 누운 상태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통증이 심한 상황이라고 A 씨는 토로했다. 80대 노모와 함께 온 보호자 김모 씨는 “모친이 뇌경색, 당뇨, 허리 디스크 등을 앓고 있는데 지난 4월로 예약된 재활의학과 치료가 내년 9월 18일로 연기됐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 정모(71) 씨도 “암 환자에게 가장 해로운 것이 불안과 스트레스인데 의사들이 앞장서서 불안을 조장하니 너무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서울의대 비대위는 환자 진료 전체 교수 967명 중 529명이 휴진에 동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미지 크게보기남은 환자들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 17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한 환자가 휠체어에 앉아 있다. 문호남 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신장암 4기 환자 B 씨도 “응급·중증 환자는 휴진하지 않겠다더니, 20일 예정됐던 진료가 다음 달 23일로 연기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며 “신장암 4기 환자가 중증 환자가 아니면 누가 중증 환자냐”고 반문했다. B 씨는 “2주 간격으로 맞아야 하는 옵디보(면역항암제)를 4주나 쉬게 됐고, 한 달 뒤에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며 “의료 파업에서 의사들을 지지하는 편이었는데 오늘부로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료 일정이 바뀌지 않은 환자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을 찾은 폐암 환자 C 씨는 “주말 내내 불안해하다가 오늘 도착하자마자 진료를 하는지 확인했다”고 한숨을 돌렸다.

의료 현장의 혼선 속에 진료 안내가 환자들에게 제대로 전송되지 않는 모습도 나타났다. 정상적으로 진료를 받는 환자들에겐 모바일 메신저로 진료안내 메시지가 자동 전송되지만, 일부 환자들은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며 “파업 때문에 그런지 노심초사하다가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왔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휴진에 들어간 교수들이 전임의에게 진료 일정 변경을 맡기는 정황도 관측됐다. 출근 중이던 한 병원 관계자는 “교수들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은 전임의에게 시키겠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강성범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이날 휴진 선포 집회에서 “진료만 충실히 하는 교수가 정의라 할 수 있는가”라며 “전공의들이 나간 지 넉 달인데 병원에 남아 환자진료를 계속하는 것은 천륜을 저버린 가혹한 요구일 수 있음을 역지사지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민우·노지운·김린아·조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