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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흑백 결혼사진 속 부모님… 이젠 꿈에서나마 뵈었으면

  • 입력 2024-05-0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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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부모님의 흑백 결혼사진. 아버지(왼쪽 세 번째), 어머니(〃 네 번째)가 사무치게 보고 싶거나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사진을 꺼내 보며 따뜻한 위안을 얻는다.



■ 그립습니다 - 아버지 문대연(1930~1992)·어머니 이금순(1936∼1977)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제강점기 때 태어나셨다. 부모님은 일제강점기, 6·25전쟁, 보릿고개, 산업화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 오면서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사시면서도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오로지 이 못난 자식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만 하다가 떠나셨다. 특히 아버지는 1949년 1월, 19세 되던 해 육군에 자원입대하셨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침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간 종횡무진 전쟁터를 누비며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수많은 전투에서 용맹함을 떨치셨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육군 상사로 전역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라는 후유증에 시달려 밤마다 비명을 지르고 식은땀도 흘리며 악몽을 꾸셨다. 당시 아버지의 비명에 가족들도 놀라 잠에서 깨곤 했었다. 그런데도 형편이 어려워 병원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라는 사실을 늘 자랑스러워하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가 벌목장에서 일을 하다가 몸을 다치셨다. 하지만 병원 치료는 사치였다.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곱게 자랐다. 외할아버지는 면장을 지낸 고향 지역의 유지(有志)였다. 또 어머님의 외삼촌은 군수를 지냈다. 하지만 가난한 아버지에게 시집와 갖은 고생을 겪으셨다.

아버지는 평소 귀한 집에서 곱게 자란 어머니를 데리고 와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픔도 뒤로한 채 산과 들을 누비며 약초를 캐고 달여 지극 정성으로 어머니를 돌봤다. 가난했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는 금실이 좋았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의 정성을 뒤로하고 41세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또 아버지는 고향 지역에 무장공비가 침투해 당시 지서에서 병역 의무를 대신하던 동네 후배가 대간첩작전 중에 큰 부상을 당해 작전지역 골짜기에서 밤새 비명을 지른다는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이 매우 위험해 주위에서 만류했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자다 말고 새벽에 현장으로 달려가 그 후배의 주검을 수습하기도 했다. 향토예비군 창설 이후에는 부중대장을 맡아 향토방위에 힘썼다.

시골 오지에서 생활하시던 아버지는 살아생전 6·25전쟁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하다가 전사한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곳에 모시고 가는 게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그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해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그런 아버지도 이른 연세에 어머니가 계시는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그런데도 부모님 생전엔 뒷바라지해주시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다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내가 부모가 된 후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용서를 빌며 눈물을 흘리고 그리워하면서 한 번만이라도 꿈속에서 만나길 간절하게 소망하며 참회하고 있다. 이제는 책과 TV에서 어머니, 아버지라는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멘다.

나는 지금도 빛바랜 부모님의 흑백 결혼사진을 고이 간직해 아버지,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거나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 사진을 꺼내 보며 따뜻한 위안을 얻는다. 누군가 ‘불효는 시간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마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식 사랑은 본능적 속성이 있지만, 부모 사랑은 의지와 노력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날이 왔다. 어머니, 아버지 천하의 불효자식이 살고 있는 이곳은 산천의 초록빛이 짙어지는 5월입니다. 어머님, 아버님이 계시는 그곳은 어떠하신가요. 어머님, 아버님! 당신이 너무 그립고 존경하고 사랑하고 보고 싶습니다.

문영호(천신CNK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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