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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10문10답

34년만에 달러당 160엔까지 가치 추락… 철강·화학 등 한국 수출에 악재

임대환 기자 외 4명
임대환 기자 외 4명
  • 입력 2024-05-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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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게티이미지뱅크



■ 10문10답 - 슈퍼엔저 현상, A부터 Z까지

기준금리, 美 5.5% 日은 0.1%
日서 자금 빠져나가 美로 쏠려
8년간 마이너스금리 유지 여파

日, 지난달 급격한 엔화 약세에
방어 차원 44조원 ‘복면개입說’
160엔 치솟다 150엔대로 내려

日기업과 무역 경쟁하는 韓기업
가격 경쟁력서 밀려 수출 악영향
국내 여행업계 日관광 늘어 수혜


“일본이 가난해졌다.” 최근 엔화 환율이 급등(엔화 가치 하락)하면서 이른바 ‘슈퍼 엔저(달러 대비 일본 엔화 약세) 시대’가 열렸다는 말들이 나온다. 엔화 가치가 급락해 그만큼 일본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돈의 가치가 다른 나라들보다 더 떨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는 의미다.

슈퍼 엔저 현상은 여러 요인이 있다. 엔화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금리를 높여야 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최상단 기준 5.5%, 일본의 기준금리는 0.1%다.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돈이 몰릴 수밖에 없으며, 그러기 위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엔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금리를 대폭 올리려 하지 않는다.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수출 등을 위해 엔화 가치가 낮은 것이 좋기 때문이다. 슈퍼 엔저 현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1. 슈퍼 엔저란

일본에서 화폐로 사용하는 엔화는 세계 3대 통화이자 ‘엔(¥)’을 화폐 단위로 하는 돈을 말한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엔 저(低)’라고 하는데, 다른 나라 화폐보다 값이 낮아지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현상이 크게 두드러지는 것이 ‘슈퍼 엔저’다. 최근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지난달 29일 장중 160엔을 넘어서는 등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의 최고치(엔화 약세)를 기록했다. 슈퍼 엔저 현상 발생은 미국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조절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유지(5.25∼5.5%)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0%에 가까운 금리 정책(0∼0.1%)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큰 금리 차이로 가격이 싼 엔화는 팔아버리고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해외에 풀린 일본의 막대한 투자금이 본토로 돌아오지 못하는 동시에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2. ‘복면개입’이란

‘복면개입(覆面 介入)’은 일본 통화 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조용하고 은밀하게 개입해 환율 조정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달 29일 해외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장중 한때 160엔을 돌파했다가 곧바로 150엔대로 떨어졌는데, 시장에서는 일본 외환 당국이 복면개입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BOJ)이 5조 엔(약 44조 원) 규모의 시장 개입에 나섰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외환시장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삼가겠다”며 말을 아꼈고, 간다 마사토 일본 재무성 재무관도 “말할 것이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일본 외환 당국은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닥쳤던 1998년 복면개입을 대거 시행했다. 시장 개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거래량이 적은 이른 아침 시간대나, 정체를 숨긴 채 외국 중앙은행에 달러를 위탁하는 수단 등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3.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마이너스금리 정책’

1990년대 시작된 일본 경제의 저물가·저성장 고착화 시기를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부른다. 일본 정부는 1985년 플라자 합의 후 발생한 엔고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리 인하를 포함한 경기부양책을 추진했는데, 이는 유동성 확대와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이어졌다. 이에 일본 정부는 3% 소비세를 도입하고 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급격한 경기안정조치를 취했지만, 장기 불황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일본 정부는 이후 단기 부양책을 쓰며 침체된 경기를 끌어올리려 했고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16년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한 것 역시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핵심이었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경제만 왜곡한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정부가 지난 3월 19일 8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를 종료하며 일본이 장기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photo이미지 크게보기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 3월 19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17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2016년 2월부터 계속돼 온 ‘마이너스 금리 시대’를 종료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4. ‘엔캐리 트레이드’ ‘와타나베 부인’

2016년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외환 시장 참가자들에게는 투자 확대 기회였다. 일본 엔화 자금시장에서 저렴하게 엔화를 빌린 다음 더 높은 금리를 주는 나라의 예금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엔캐리 트레이드’라고 부른다.

일본 은행이 오랜 기간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이 같은 엔캐리 트레이드 투자가 성행했다. ‘와타나베 부인’이라고 불리는 일본 투자자들이 ‘엔캐리 트레이드’를 통해 투자한 해외자산 규모는 최대 20조 달러(2경67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종료함에 따라 향후 와타나베 부인들의 움직임에 글로벌 금융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 매력이 떨어지게 되고 규모를 보면 청산에 따른 파장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마이너스 금리 폐지에 대해 “천천히 움직이는 쓰나미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반면,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골드만삭스는 “마이너스 금리 해제가 미·일 금리 차 축소에 별로 기여하지 못해 엔캐리 투자는 여전히 매력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5. 일본 금리와 미국 금리의 관계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일본의 금리 정책 역시 미국의 금리 정책과 뗄 수 없는 관계다. BOJ는 8년 동안 지속해 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내기로 지난달 결정한 바 있다. 엔화 약세 현상을 바로잡아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마이너스 금리 해제에도 엔화는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유는 미국 때문이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기 위해서는 미국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미국의 금리 인하는 애초 3차례에서 1차례로 축소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져 달러 강세가 계속된다면 엔화 약세는 벗어나기 어렵다. 엔·달러와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미·일 내외금리 차로, 이번 일본의 금리 인상으로 금리 차가 축소되기는 하겠지만, 점진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큰 폭의 엔화 강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6. ‘원·엔 재정환율’이란

1국의 통화와 각국 통화의 환율을 산정할 때, 그 기준으로 삼는 특정국 통화와의 환율을 ‘기준환율(basic rate)’이라고 한다. 이 기준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한 1국 통화와 제3국 통화 사이의 환율이 ‘재정환율(arbitrage rate)’이다. 특정국으로는 당해국과 경제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그 통화가치가 안정된 유력국이 선정된다. 원·엔 재정환율의 경우, 달러화를 발행하는 미국이 특정국이 되고 원·달러가 기준환율이 되는데, 일본의 엔화는 이 기준환율을 통해 간접적으로 계산된다. 재정환율을 계산하기 위해 사용된 특정국 통화와 제3국 통화와의 환율을 ‘크로스레이트(cross rate)’라고 한다.

7. 슈퍼 엔저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

슈퍼 엔저 현상은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글로벌 무역에서 일본 기업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양국 간 경합 분야가 많을 경우 슈퍼 엔저는 우리 수출에 악재일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과 일본의 수출 경합도는 69.2로, 미국(68.5)·독일(60.3)·중국(56.0) 등 주요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는 한·일 양국의 산업 및 수출 구조가 타 국가에 비해 더 비슷하다는 의미다. 달러 대비 엔화가치가 1%포인트 내리면 한국의 수출가격은 0.41%포인트, 수출물량은 0.20%포인트 하락한다. 일본 상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낮아지면서 해외시장에서 경합하는 한국 상품이 가격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는 뜻이다.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선박, 기계류 등이 일본과 경합도가 높은 품목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과거와 달리 환율의 영향력이 줄어 한국 수출품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8. 슈퍼 엔저 수혜주

슈퍼 엔저 수혜주로는 여행업종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엔화가 떨어질수록 관광비용이 저렴해지므로 일본을 찾는 여행객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하나투어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7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8.27% 늘어날 전망이다. 2분기 전망치도 200.05% 증가한 122억 원이다. 모두투어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도 50.36% 늘어난 95억 원을 나타냈다. 일본 등 단거리 노선을 중심으로 하는 항공업종, 특히 저비용항공사(LCC)의 실적 전망도 밝다. 진에어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89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13%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주항공도 0.40% 증가한 7089억 원으로 추정된다. 진에어와 제주항공도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으로 시장에선 내다보고 있다.

9. ‘사무라이7’이란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가 미국 주가 상승을 이끄는 ‘매그니피센트7(M7)’을 본떠, 일본에서는 ‘7인의 사무라이’가 증시를 이끈다고 분석하면서 내놓은 개념이다. 골드만삭스는 유동성이 높은 종목을 대상으로 연초와 앞서 12개월 동안 주가 흐름이 양호하고, 2020년 이후 적자를 기록하지 않은 곳을 ‘사무라이7’으로 선정했다. 반도체 장비 기업 스크린홀딩스·어드반테스트·디스코·도쿄일렉트론, 자동차 업체인 토요타·스바루, 종합상사인 미쓰비시상사 등 7곳이 해당한다. 사무라이7에 속하는 기업들은 일본 증시에서 평균 거래량 5000만 달러 이상으로 유동성이 높고, 2020년 이후 영업손실이나 순손실을 기록하지 않은 종목들이라는 특징이 있다. 사무라이7 종목들은 일본 증시의 주도주로서 지난해 미 국채 금리 상승기에도 시장 및 여타 종목보다 양호한 주가 퍼포먼스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 ‘슈퍼 엔저 시대’ 재테크

증권가에선 엔화로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일본 주식 등으로 돈이 몰리는 분위기다.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해 저평가돼 있던 일본 기업들의 재평가가 시작됐고, 엔저로 인해 더 싸게 투자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주식가치 상승으로 인한 수익률뿐만 아니라, 엔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원화로 산 후 엔화 가치가 오를 때 팔면 환차익까지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가 보유 중인 일본 주식 규모는 4월 기준 5조5530억 원 수준이다. 1년 전 4조1189억 원보다 1조4000억 원 넘게 늘었다.

엔화 예금도 슈퍼 엔저 시대 주요 투자 방식으로 꼽힌다. 엔화 예금은 원화를 입금하면 자동으로 환전되고, 외화로 직접 입금할 수도 있다. 엔화 가치가 하락했을 때 원화를 엔화로 바꾼 후 엔화 가치가 오르면 팔아 환차익을 얻는 방식이다. 환차익으로 발생하는 수익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엔화 예금 투자는 이른 시일 내 환차익을 볼 생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엔화 가치가 역사적으로 가장 떨어진 구간에 엔화를 분할 매수하는 것이 유효한 전략이라고 조언한다.

임대환·박정민·박수진·박정경·신병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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