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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급여보고제’ 시행 탄력

손가락에 0.1㎜ 물혹 있다며
주사·체외 충격파·냉각 치료

과잉진료로 의료비 폭증 주범
그동안 현황 파악할 방법 없어

내년 하반기 모든 비급여 공개
미용·성형은 대상서 빠져 한계

최근 직장인 A 씨는 엄지손가락이 저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엄지손가락에 초음파 검사부터 하더니 0.1㎜짜리 물혹이 보인다면서 이름 모를 주사를 놓았다. 이후 빠른 회복에 도움 된다면서 체외충격파 치료를 비롯해 냉각치료 등 물리치료 2∼3가지를 권했다. A 씨가 1시간 30분 동안 치료를 받은 후 확인한 진료비 내역서에는 60만 원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었다. 값비싼 치료 후에도 차도가 없자 A 씨는 결국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A 씨는 당시 적정한 치료를 받고 적절한 치료비를 냈는지 의문이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의사 재량권으로 비싸게 책정할 수 있는 비급여 진료는 과잉 진료를 유발해 국민 의료비 부담을 치솟게 하는 ‘주범’으로 꼽혔지만 그동안 진료내역을 파악할 정책 수단이 없어 관리 사각지대에 있었다. 내년부터 모든 의료기관이 정부에 비급여 내역을 제출해야 하는 ‘비급여 보고제’가 본격화되면 의료 소비자인 국민은 병원별로 특정 수술이나 시술 비용을 비교할 수 있게 된다. 과도한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정부의 관리·감독이 처음 이뤄지면서 국민의 의료 선택권을 높여주는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앞으로 병원급 의료기관은 매년 3월과 9월의 진료내역을, 의원급은 3월 진료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오는 15일까지 전국 4400여 개 병원급 의료기관이 9월분 한 달 치를 복지부에 제출한다. 동네 병·의원은 내년 3월분부터 보고해야 한다. 올해 비급여 보고 대상은 594개 항목이다. 내년엔 1017개 항목으로 늘어나는데, 이는 전체 비급여 규모의 90%로 추정된다. 구체적인 보고 내역은 비급여 항목의 비용, 진료 건수, 진료 대상 질환, 진료할 때 실시한 주 수술·시술의 명칭 등이다. 이는 지난 3월 헌법재판소가 의료계가 낸 위헌소송에서 “비급여의 관리는 적극적으로 국민의 보건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할 국가의 책무”라며 합헌 판결을 내리면서 9월 ‘비급여 보고제’가 공포된 데 따른 것이다.

비급여는 환자가 전액 부담하지만 정해진 금액은 없다. 같은 시술을 받아도 병원마다 진료비가 제각각인 이유다. 백내장 수술용 다초점렌즈의 가격 차이는 33만 원부터 900만 원까지 27배나 난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비용도 병원에 따라 3∼4배가량 차이가 난다. 도수치료비도 중간값은 10만 원대지만 0원에서 60만 원까지 가격 편차가 크다. 이에 의사는 진료비를 마음대로 정하고, 환자는 실손보험을 통해 진료비를 보전받을 수 있는 구조 탓에 과잉 진료가 만연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의료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나온다. 의학 정보를 잘 알지 못한 환자로서는 비급여 진료의 임상 효과에 대해 의사 판단에만 의존해야 한다. 환자들은 의료 소비자로서 선택권을 누리지 못한 채 과잉 진료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를 확대 개편해 모든 의료기관의 비급여 진료내역을 공개할 예정이다. 정부는 비급여 보고 내용을 비급여 관리와 건강보험 보장성 정책 등의 기초자료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백내장 다초점렌즈와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치료 등 주요 비급여 항목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는 수단으로도 삼는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민 수요가 높은 비급여의 종합적인 정보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며 “비급여 보고제를 통해 합리적인 의료 이용과 비급여를 둘러싼 불필요한 의료기관과 환자 간 갈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비급여 시장을 기형적으로 키운 피부미용과 미용성형은 치료 목적으로 한정된 비급여 보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한계점은 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