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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많은 세월 사시다가 50대 초반에 떠나버린 누나

  • 입력 2023-11-09 09:00
  • 수정 2023-11-0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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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이미지 크게보기 1990년 아버지 회갑 때 고향집 마당에서 병풍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앞줄에 부모님이 앉아계시고 형제들이 모두 뒤에 섰다. 뒷줄 왼쪽부터 막내 여동생, 누나(이덕준), 여동생, 남동생, 나(이응춘), 나의 아내.



■ 그립습니다 - 누나 이덕준 (1957∼2010)

가을이다. 결실의 계절과 오색 찬란한 단풍이 드는 계절 가을이 되니 즐겁기도 하지만 13년 전 이맘때쯤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누나가 그리워진다.

가난한 집 장남으로 태어난 나는 위로 두 살 많은 누나가 한 분 계셨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마을의 여섯 가구가 모두 일가친척으로 농촌이라기보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산촌이었다. 열세 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중학교에 진학해서 공부하는데 누나는 논밭에 나가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도왔다. 뙤약볕 아래에서 풀을 뽑고 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치면서 너무 많은 고생을 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0리 떨어진 읍내 장흥중에 진학해 자취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친 후 시골집에 오면 가장 먼저 누나가 마당에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주고, 내 검은색 교복을 손수 세탁해 다리미에 숯을 넣어 구김 없이 다려 주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누나는 동생인 나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누나는 다림질을 해주며 “너는 우리 집의 장손이고 장남이니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 한다”고 수없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오직 한 명뿐인 누나는 고향에서 부모님의 농사일을 돕고 인근 마을에 가서 그 어린 나이에 바느질을 배웠다. 그러다 20대 초반에 울산 현대조선에서 일하던 매형을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매형은 시골에서 상업고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면서 누나와 결혼했는데 누나가 초등학교만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많이 무시하고 괄시했다고 한다. 신혼 시절 설움도 많이 받고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훗날 누나에게서 들었다.

그 당시 누구나 그랬지만 나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지라 간신히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국가의 부름을 받아 현역병으로 3년간 군 생활을 하고 제대해 울산에서 신혼살림을 했던 누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아침이면 누나가 해준 아침밥을 먹고 점심과 저녁 도시락 2개를 싸서 누나의 전셋집과 가까운 독서실에 가서 밤새도록 공부하고, 밤이면 독서실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공부했다.

누나의 뒷바라지 덕분인지 독서실에서 힘들게 공부한 지 두 달 만에 김포국제공항공단과 경찰공무원인 순경 공채 시험에 합격해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두 곳의 필기시험에는 합격했으나 면접시험에는 낙방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별별 고생을 하면서 철도청과 우체국 그리고 서울시 행정직 공무원에 합격해 공직 생활 33년을 마치고 행정 사무관으로 퇴직했다.

누나는 울산에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다가 고등학생이던 딸을 뒷바라지했는데 딸이 고3 때 백혈병에 걸려 서울 아산병원에서 1년 동안 치료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누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간병하다 결국엔 사랑스러운 딸이 하늘나라로 떠난 후 몇 년 있다 불치병인 암에 걸려 이제는 영영 다시 올 수 없는 딸의 곁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우리 누나가 한 많은 세월을 사시다가 50대 초반에 하늘나라로 떠난 지 벌써 13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저 멀리 떠나버린 불쌍한 누나가 너무나 보고 싶다.

지금 살아계신다면 나도 정년퇴직해서 시간적 여유도 많으니 우리 남매가 자주 만나서 맛집도 같이 다니고 좋은 곳 여행도 많이 할 것인데 참 무정한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동생 이응춘(전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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