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어머니(왼쪽)가 요양원에 계실 때 면회 온 손자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 그립습니다 - 전정례(1938∼2022)

그날따라 하늘은 온통 먹구름투성이였다. 싸락눈이 간간이 날리며 한바탕 눈이 쏟아진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날씨 탓이었을까. 새벽 어스름 녘에 나는 마치 가슴에 돌덩어리 하나를 얹은 듯한 기분으로 힘겹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힘겹게 버티던 오후 5시 40분쯤,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이 노트북 옆에서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진동소리는 벌겋게 달군 프라이팬의 기름처럼 책상 위에서 사납게 떨며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이었다. 뭐라 딱 집어 말할 순 없었지만 기저귀가 떨어졌다느니, 비닐장갑이 부족하다느니, 욕창방지용 매트가 구멍이 났으니 새로 사오라는 전화가 울리던 때와는 너무나 느낌이 달랐다.

휴대폰이 세 번쯤 울었을 때 통화버튼을 누르자 간병인분의 다급한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니 빨리 와주세요.”

‘올 것이 왔구나.’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말문이 트이질 않았다. 쥐어짜듯 간신히 “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는 병원으로 내달렸다.

눈물 반, 콧물 반의 몰골로 병원에 도착하니 엄마는 이미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도무지 닿을 수 없는 아득한 곳으로 떠나신 뒤였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엄마 손을 붙잡고 흐느꼈다.

“엄마, 엄마! 이제 우리 걱정은 마시고 부디 아프지 않은 곳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저희 열심히 잘살겠습니다. 사랑해요, 엄마!”

살아생전 왜 그렇게 못했을까. 사랑한다는 말은 왜 그렇게 아꼈을까. 소멸되는 육신을 앞에 두고 허망한 소망을 빌고 있는 불효자의 마지막 애원만 허공에서 주인 없는 메아리로 떠돌 뿐이었다.

병세가 위중해 막상 돌아가시는 순간에는 그렇게 임종도 못 한 채 외롭게 보내드렸지만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쯤 임종면회라는 걸 할 기회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생사고비를 넘나드는 바람에 병원에서 지레 연락한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조치가 여전하던 때라 면회조차 자유롭지 않아 못 뵈던 차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이 너무나 애처로웠지만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우리 엄니, 인기는 여전하시네. ‘보고 싶다’는 한마디에 이렇게 득달같이 달려오는 자식들 보면 걱정할 게 뭐 있수?”

그 순간 어머니 얼굴에 스치듯 미소가 피어올랐다. 난 그 아름다웠던 미소만 기억하려고 한다. 내 남은 생이 끝나는 순간까지.

어머니가 가시던 날은 언론이 호들갑을 떨 만큼 그해 겨울 중에서도 가장 추운 날씨였다. 살을 에는 새벽 댓바람에도 장지까지 함께해준 분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고, 가족 같은 그이들 덕분에 회한 없이 어머니와 이별할 수 있었다.

“너도 이제 어른이 됐네….”

어머니 부고에 문상 온 친구들은 그렇게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부모의 부재로 인해 고아가 되기도 했지만, 어른이 됐다는 건 내가 내 가족들에게는 최전방 스트라이커이자 최후방 스토퍼가 됐다는 의미일 것이니 그 막중한 책임을 어머니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잘 채우라는 격려였을 것이다.

경남 의령군 대의면 담양 전(田)씨 집성촌에서 4남 1녀의 외동딸로 태어나 저희 5남매를 지극정성으로 키워주신 정(貞) 자, 례(禮) 자 어머니.

어머니가 저희에게 주신 한없는 사랑을 기억하고 남은 생 베풀며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고맙고, 고맙고, 고맙습니다.

2023년 어머니 가시고 맞이하는 첫여름에

큰아들 김상호(쿠어린이재단 대표·전 경기콘텐츠진흥원 원장대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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