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5월 31일 오후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제주 서귀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일역사화해와 대화 :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발언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올 1월 일본의 유력 언론인 마이니치(每日) 신문 소속 한 기자의 기사가 ‘취재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설명과 함께 삭제조치 되는 일이 있었다. 삭제된 기사 내용은 일본 대학생 5명이 ‘한·일 과거사를 바로 봐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펴낸 책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에 대한 것이었다. 책의 저자인 대학생들은 해당 기사가 근거 없이 자신들을 비판했다고 보고 언론사를 상대로 끈질기게 기사 수정을 요구했다. 언론사에서 한 번 보도된 기사를 삭제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어서 관심을 끌었다.

이 같은 사례는 1일 개막한 제18회 제주포럼 일환으로 동북아역사재단이 전날(5월 31일) 주최한 ‘한·일역사화해와 대화 :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세미나에서 소개됐다. 일본의 평범한 대학생들이 엮어낸 책은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을 정면에서 다뤘다. 한·일 간 역사문제가 일본 내에서 금기시된 상황에도 1만 1000부나 판매돼 나름의 성과를 냈다. 그럼에도 일본의 유력 언론사 중 어느 한 곳도 이 책에 대한 기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고 한다. 가토 케이키(加藤圭木) 히토츠바시(一橋) 대학 교수는 세미나에서 "한·일 간 역사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토 교수는 "지금의 일본 사회는 식민지 지배 책임에 마주할 것을 촉구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일본 시민에게는 식민지배 역사에 대해 착실하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 나갈 것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어렵사리 한·일관계 개선 동력을 되살렸다는 점에 공감대를 보였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윤 정부는 여러 난관과 갖은 비난을 무릅쓰고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풀었다"며 "일본 정부도 이제 한국 정부의 진의와 용기를 평가하고 손뼉을 마주치는 자세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양국 역사에 대한 공동 연구 필요성 제기로 이어졌다. 한·일이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서로 다른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정 명예교수는 "윤 정부가 모처럼 만든 관계개선의 동력을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이 역사공동연구를 재개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일이 국가적 위상에 부합하는 국제사회의 규범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에 대해 대화하고 서로를 포용해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중단된 한·일역사대화의 재개를 통한 국제규범에 형성에 기여하는 길은 매우 힘들지만 반드시 가야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국제관계와역사대화연구소장은 이날 세미나 토론에서 "한·일 역사 화해를 위한 새로운 공동기구를 조직해 연구하고, 정부는 안전보장과 경제, 문화 등 현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귀포=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