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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헌신하고 청빈한 삶 사셨던 나의 큰 스승 ‘아버지’

  • 입력 2023-05-11 09:11
  • 수정 2023-05-1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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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전병린(1914∼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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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묻어나는 밤이다. 별들이 눈부시게 내 주위를 맴돌고 별 하나에 그리움이 떠오르는 아버지와 어머니 얼굴, 빛바랜 사진 속 모습은 오늘도 함께 하기에 이별은 슬프지만 그리움으로 저물어 간다.

아버지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이북5도청 함경북도 회령시 화풍면 명예 면장을 지내셨다. 아버지의 집보다 어머니의 집이 더 잘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같은 동네에서 양조장을 하셨다고 하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어머니의 집에서 아버지와 결혼을 반대했지만, 사랑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더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6·25 피란길에 아버지가 먼저 남으로 오셨다. 어머니와는 부산 영도다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해 음력 12월,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순애보와 같은 사랑을 가진 어머니의 삶은 억척스럽다 못해 또순이라고 불렸다.

어린 시절 강원도 원주와 춘천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원주에서 내 밑의 동생으로 여자 쌍둥이에 대한 기쁨은 잠시였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의 하염없는 눈물을 그때 처음 보았다. 그 후 춘천으로 이사와 기와집 골목에서 살던 생각이 난다. 당시 아버지는 병사국 사령부에서 근무하시다 서울로 발령받았다. 그리고 국방부에서 정년을 맞으셨다. 청렴하셨던 아버지인 것은 국방부 장관 표창 등이 말해주고 있다. 남들의 어려움은 잘 들어주면서 가정일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어머니의 경제적 도움이 컸다. 나는 아버지를 존경스럽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후회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봉사기관에서 정상을 딛고 내려와 글을 쓰면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한국의 문화를 가르치고 있는 나, 병원 간호부장인 아내와 두 아들, 딸 같은 며느리, 손자 녀석과 함께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살고 있다.

아버지와 여행을 다닌 추억이 별로 없는 것 같아 후회된다. 가족과 석양이 물든 바닷가를 떼 지어 나는 기러기를 보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뭉게구름처럼 나의 가슴에 머문다. ‘흥사단’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께서 독립운동과 민족부흥운동을 위해 만든 단체 상징물이 바로 ‘기러기’다. 어린 시절 집으로 보내오는 정기 간행물 ‘기러기’는 흥사단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였다.

대한적십자사 재직 시절 도산 안창호 선생 유족과 열흘간 뜻깊은 여정을 함께하면서 아버지의 흥사단 입단 원서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도산의 장녀 안수산 여사가 나를 안아주며 가족에게 “미스터 전, 당신의 아버지는 흥사단 단원이었다”고 한 말에 눈물이 났다.

철없던 아들이 도산 선생님 가족 옆에 있는 것을 보신다면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의 고운 마음처럼 예쁜 필적이 잉크에 묻어 있는 입단 원서 복사본을 보고 아내가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는 아내가 대학원 공부에 필요한 지식과 생활, 병원 행정관리업무 등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아내는 며느리를 딸처럼 자상하게 대해주시던 아버지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기억에 아내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품은 어머니 품이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집은 어머니가 계시는 집이라는 것을 나이가 드니 알 것 같다. 내 몸에는 회령의 피가 흐르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현장과 북한 수해 물품 인도 단장으로 피 말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나 자신이 이산가족의 아픔을 갖고 있지만, 적십자사 직원이란 이유로 혹시나 특혜라는 오해를 살까 봐 아예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불효의 죄책감을 고백한다. 저 가깝고도 먼 북녘땅에 이산가족들이 외치는 ‘통일의 아우성’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휴전선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에 헌신하며 청빈한 삶을 사신 나의 큰 스승 ‘아버지’, 책을 읽지 않는 나에게 “눈이 피곤해서 어쩌니…”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지금도 가슴이 뭉클거린다.

전원균 전 대한적십자사동우회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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