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용산에 간 야당 박홍근(앞줄 오른쪽 여섯 번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및 쌀값 정상화 태스크포스(TF) 소속 민주당 의원 등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대통령 첫 거부권 행사

“남는 쌀 강제매수하는 법안
정부 농정개혁 목표에 반해”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통과”
野입법독주 견제 역할 시사

朴 국회법 거부권이어 7년만
역대 16번 행사…재의결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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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4일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 농정 목표에 반하는 법안”이라며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 절반 이상을 양곡관리법 부작용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 농정의 목표는 농업을 생산성이 높은 산업으로 발전시켜 농가 소득을 향상시키고 농업과 농촌을 재구조화하여 농업인들이 살기 좋은 농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농업과 농촌을 농산물 가공산업, 관광, 문화 콘텐츠와 결합해 2차·3차 가치가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이 법안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정부의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정부에 제기한 ‘반(反)농민’, ‘민생 역행’ 프레임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윤 대통령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대목에선 목소리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이번 거부권 행사가 40개 농업인 단체 등 농민들의 의견은 물론 전문가들의 분석을 반영한 것임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아울러 정부부처에 농업계, 당정협의 등을 통해 쌀 수급 안정화와 농업 경쟁력 향상 대책 수립을 주문했다.

여권 관계자는 “자유민주주의에선 다수결을 원칙으로 하지만 그렇다고 다수의 입법 독재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통령은 이번 거부권 행사를 야당의 입법 독재를 견제하는 균형추 역할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야당이 법안을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반복될수록 정치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여권의 중론이다. 민주당이 방송법 개정안, 노란봉투법, 간호법 제정안을 강행 처리하면 대통령실과 여당은 반발하는 수순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이 대통령 거부권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이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한두 번이 보통”이라며 “윤 대통령에게 ‘의회 무시 대통령’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1987년 민주화 이후로는 총 16번(노태우 7건·김영삼 0건·김대중 0건·노무현 6건·이명박 1건·박근혜 2건·문재인 0건) 행사됐고, 국회 재의결을 통해 법률로 확정된 경우는 1건에 불과하다.

김윤희 기자 wor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