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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웨스트 뱅코프 등 주가 폭락
자산거품 부동산 대출 비중 커

베커회장 도덕적해이 논란 확산

워싱턴 = 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지 이틀 만인 12일(현지시간) 뉴욕주 금융당국이 시그니처은행을 전격 폐쇄하는 등 미실현손실이 6200억 달러(약 714조 원)로 추산되는 미 금융권의 위기가 끝나지 않고 있다. 미 금융권은 8일 자진청산을 발표한 실버게이트은행에 이어 시그니처은행까지 가상화폐 관련 거래비중이 큰 은행, 부동산 관련 대출이 많은 은행 등이 유동성 부족에 따른 지급불능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미 뉴욕주 금융서비스부(DFS)는 이날 뉴욕주 소재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 2001년 설립된 시그니처은행은 2015년 포브스 선정 미국 최고 은행으로 꼽히는 등 자산가·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세를 확장해 뉴욕과 캘리포니아, 코네티컷 등에 38개 지점을 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일가의 골프장 사업에 자금을 조달하고 이방카 트럼프가 2011∼2013년 이사로 재임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시그니처은행이 위기를 맞은 것은 2018년 이후 가상화폐 관련 거래비중이 커진 점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세계 최대 가상화폐거래소 바이낸스의 거래은행이기도 한 시그니처은행은 지난해 12월 이후 관련 사업 축소를 선언했지만 8일 함께 가상화폐 전문 양대 은행으로 꼽히던 실버게이트은행이 청산을 발표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당시 월가 대형은행인 웰스파고는 실버게이트은행 청산으로 시그니처은행이 가상화폐 업계에 마지막 남은 대형 거래은행이 됐다며 매수 의견을 냈지만 정반대 결과를 맞은 셈이다.

미 금융가에서는 가상화폐 관련 은행과 함께 역시 자산 거품이 큰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이 큰 은행들이 추가 파산 가능성이 큰 대상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 2거래일 동안 주가가 54% 폭락해 거래 중단된 팩웨스트 뱅코프의 경우 전체 대출의 3분의 2가 부동산과 관련돼 있다. 역시 같은 기간 주가가 29% 떨어진 퍼스트리퍼블릭은행도 최근 몇 년간 주택담보대출(모기지) 사업에 집중해 대출을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갑작스러운 유동성 위기에 취약한 중소 은행이나 지역 은행들 역시 상대적으로 작은 위험요소에도 손쉽게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은행들은 모두 6200억 달러의 미실현손실(가격이 하락했지만 아직 매각되지 않은 자산)을 안고 있다.

한편 파산한 SVB의 그레그 베커 회장 겸 CEO는 경영상황 악화에도 지난 2월 27일 360만 달러 상당의 지분을 매각했으며, 직원들 역시 10일 파산 결정이 내려지기 몇 시간 전 지난해 업무실적에 대한 보너스를 지급 받아 ‘도덕성 해이’ 논란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