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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과 의사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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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검진을 받는 날은 1년 생활 성적표를 받는 날이다. 처음 1년을 꽉 채워 피트니스를 다녔기에 올해는 기대가 컸다. 체성분 분석기에 올라가 보니 체중은 1㎏ 정도 줄었으나 근육량이 그대로였고 체지방만 조금 줄어들었다. 나름대로 근력운동을 꾸준히 했는데 실망스러웠다. 마침 넷플릭스엔 ‘피지컬: 100’이 나온다. 내 몸이 더 한심해 보였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는 마음이 이런 거구나.

그렇지만 50대에 1년에 1%씩 근육량이 자연히 감소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나마 선방했다는 지식은 한 스푼의 위로를 준다. 그런 맥락에서 노년내과 의사 정희원의 ‘당신도 느리게 나이가 들 수 있습니다’(더퀘스트)는 최대한 오래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보험 들듯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책이다.

나이가 들수록 신체적 정신적으로 늙어가며 구조적, 기능적으로 고장이 나기 시작하며 스트레스를 견딜 능력이 줄어드는 것을 노쇠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 양적으로는 100가지 기능 중 10개가 고장 나면 0.1로 평가할 수 있다. 만일 지수가 0.25, 즉 4분의 1 정도 고장 나면 겉으로는 멀쩡해도 작은 스트레스에 돌이킬 수 없는 기능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그 반대가 ‘내재역량’으로 노쇠에 견딜 수 있는 힘이다. 50 정도의 근량이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근력이라고 가정하자. 만일 70인 사람은 겨울에 폐렴에 걸려서 2주 정도 입원해서 근력 감소를 경험해 10 정도 떨어져도 회복 후 앉을 수 있다. 만일 51인 사람이었다면? 의자에 앉아 있을 수 없게 되니 근력의 유지보수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최소한의 활동량으로 전체적 회복이 어려워지고, 이제는 침대에서만 지내고 화장실도 도움을 받는 상황이 된다. 산술적으로 내재역량은 1-노쇠지수라 할 수 있고, 가급적 건강할 때 내재역량의 기본값을 높여놓는 것이 필요하다. 평소 큰 문제가 없는 사람은 자신의 내재역량이 얼마인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다. 마치 큰 어려움 없던 중산층 가정이 가장의 실직으로 단번에 돌이키기 어려운 경제적 곤궁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저자는 강화할 내재역량을 이동성, 건강과 질병, 마음건강, 내게 중요한 것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드는 것, 타고난 유전자는 모두 불변의 상수지만, 생활습관, 운동, 질병 관리, 스트레스 관리는 충분히 가속 노화로 인한 노쇠의 속도를 줄일 수 있고, 내재역량을 강화할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노쇠는 문제가 발생한 다음에는 이미 늦는 경우가 많기에 중년 이후 미리 오래 준비해야 한다. 이건 마치 노후 대비로 연금 3층 탑을 쌓으라는 권유를 받는 것과 비슷했다. 그렇지만 저자가 책에서 하라는 걸 다 따라 할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혔다. 이미 인생이 너무 많이 지나온 것 같고, 오늘 즐겁지 않은 삶은 무의미하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보험금 내느라 고기 한번 못 사 먹는 것같이. 결국 그사이에서 밸런스의 접점을 찾는 것이 현실적 선택이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