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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Z세대 신풍속도

“매년 사던 다이어리조차 안사”
누적된 실패감에 신년계획 패스
“열정적 삶 ‘갓생’은 포기” 늘어

새해를 앞두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가운데 ‘갓생(열정적인 삶을 뜻하는 신조어)’ 대신, 새해 계획조차 세우지 않는 ‘걍(그냥)생’족이 늘고 있다. 코로나19와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누적된 실패감과 불확실성을 체감한 MZ세대가 새해 목표를 세우는 의지조차 상실한 채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 학번’인 20학번 조모(23) 씨는 23일 “성인이 된 후 설레는 마음으로 매해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19로 계속해서 좌절됐다”며 “더는 신년 계획을 세울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당시 현장에 있었던 김모(여·27) 씨는 “몇 분의 차이로 생존했다고 생각하니 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고 털어놨다. 권현지(여·28) 씨는 매년 새해를 앞두고 다이어리를 구매했지만, 이번엔 사지 않았다. 권 씨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데, 올해는 그런 에너지조차 생기지 않는다”며 “새해 계획은 딱히 세우지 않고,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려 한다”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핼러윈을 즐겁게 보내려는 의도로 이태원을 찾았지만, 참사라는 끔찍한 결과가 발생하는 등 MZ세대는 이번 참사를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확실히 경험했을 것”이라며 “불확실함은 삶의 주체성을 상실하게 해 신년에 대한 기대감도 상실하게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사람들은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요인 때문에 목표나 계획을 달성하지 못해도 자신의 실패로 여긴다”며 “이런 실패가 누적되면 불안과 죄책감이 쌓이고, 신년 목표를 세우는 것 자체에 부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걍생’족이 사소하고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자기 삶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장기적이고 큰 목표는 언제나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사소하고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을 먼저 되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승현·조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