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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그룹은 BTS로 정점 판단
대형엔터, 걸그룹 잇따라 선봬

하이브 ‘르세라핌’ 5월에 공개
YG는 ‘베이비 몬스터스’ 특허
JYP, 지난2월 ‘NMIXX’ 데뷔
SM ‘에스파’ 코로나시대 각광

韓기획사 시총 20조원에 육박
음악IP 발굴 글로벌 시장 겨냥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글로벌 지도를 바꿔놓았다. 하늘길이 막히며 물리적 국경은 더 공고해진 반면 온라인의 빗장은 더 낮아졌다. 이렇듯 삶의 패턴이 바뀐 사회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K-팝이다. 팬데믹 기간, 그룹 방탄소년단(BTS)·블랙핑크 등 K-팝의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팬데믹 3년 차에 접어든 세계가 물리적 빗장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주요 K-팝 기획사들은 오프라인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짊어질 신규 그룹들을 새롭게 론칭하고 있다.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거듭난 명가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신인 그룹으로 대리전을 치르는 20조(兆) ‘쩐의 전쟁’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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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제2의 BTS·블랙핑크를 찾아라

BTS를 앞세운 하이브를 비롯해 SM, JYP, YG,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등 유력 기업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걸그룹 시장에 뛰어들었다. 보이그룹의 경우 정점을 찍은 BTS의 위세가 여전한 반면, 블랙핑크·에스파 등이 개척해가고 있는 글로벌 걸그룹 시장은 상대적으로 블루오션이라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이브는 오는 5월 걸그룹 르세라핌의 데뷔를 앞두고 지난 4일부터 ‘더 퍼스트 모먼트 오브 르세라핌’(The First Moment of LE SSERAFIM)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프로젝트는 BTS의 성공을 일군 방시혁 프로듀서 겸 하이브 이사회 의장이 진두지휘한다. BTS 이후 투모로우바이투게더와 엔하이픈 등 주로 보이그룹 중심으로 판을 짜던 방 의장의 새로운 도전이다.

르세라핌은 ‘IM FEARLESS’를 애너그램(문자의 배열을 바꿔 새로운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놀이) 방식으로 만든 이름으로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리더인 김채원을 비롯해 사쿠라, 김가람과 막내 홍은채 등 멤버들을 한 명씩 공개하고 있다. 지난 4일 이후 소개되는 르세라핌의 멤버를 소개하는 영상은 사흘 만에 500만 뷰가 넘는 누적 조회 수를 기록했다.

원더걸스를 시작으로 트와이스·있지 등을 연이어 발굴하며 ‘걸그룹의 명가’라 불리는 JYP엔터테인먼트는 지난 2월 신인 걸그룹 NMIXX(엔믹스)를 공개하며 포문을 열었다. 이들의 데뷔 싱글은 초동 22만 장이 넘게 팔리며 역대 걸그룹 데뷔 앨범 기준 1위를 차지했다. 데뷔곡 ‘O.O’(오오) 뮤직비디오는 공개 하루 만에 유튜브 조회 수 2000만 뷰, 4일 만에 3000만 뷰를 돌파한 데 이어 10일 기준 6000만 뷰에 육박한다.

YG 역시 블랙핑크 이후 6년 만에 걸그룹을 론칭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 YG가 특허청에 ‘베이비 몬스터스’라는 이름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현재 4세대로 평가받는 걸그룹 시장은 YG의 블랙핑크(2016년 데뷔)가 열었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가 7340만 명으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등 유튜브와 SNS 플랫폼을 활용해 글로벌 활동에 집중했다. 이후 등장한 큐브의 (여자)아이들(2018년 데뷔), SM의 에스파(2020년 데뷔) 역시 온라인을 기반으로 세계를 겨냥한 다양한 세계관을 펼치며 코로나19 시대에 오히려 각광을 받았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런 전략은 르세라핌, 엔믹스 등 4세대 걸그룹의 대미를 장식할 후배들에게도 적용된다. 한국 무대 정착 후 해외에 진출한다는 전략이 아니라, 시작과 동시에 글로벌 무대로 직행하는 방식이다. 미국 타임은 신보가 나오면 유튜브나 SNS를 통해 공개한 후 강력한 팬덤을 등에 업고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과 실물 앨범 판매를 활성화시키는 이 전략을 두고 “BTS에서 시작된 K-팝의 제작·유통·소비 방식이 세계 음악 시장의 구조를 완전히 바꿨다”고 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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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 달라진 韓 엔터테인먼트 기업

K-팝 그룹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을 육성하고 글로벌 그룹의 반열에 올리는 K-엔터테인먼트 산업까지 주목받고 있다.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를 비롯해 SM, JYP, YG 등 전통 명가들의 기업가치 역시 천정부지로 솟았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트위터가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이라면, 이 기업들은 전 세계 인구가 소비하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플랫폼으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코로나19 창궐 시기인 2020년 초, K-팝 기업들의 전망은 어두웠다. 주요 수익원 중 하나인 오프라인 공연이 불가능해지면서 주가가 곤두박질했다. 하지만 글로벌 플랫폼을 타고 K-팝을 소비하는 이들은 오히려 증가했고, 온라인 공연 시장을 개척하며 기업가치는 빠르게 회복됐다. 지난 8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 13조 원이 넘는 하이브를 비롯해 SM, JYP, YG, 큐브 등 상장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가치는 도합 20조 원에 육박한다. K-팝 그룹을 기획·육성·데뷔·성장시키는 노하우를 갖춘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력까지 확보한 셈이다.

타임은 최근 하이브를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으로 2년 연속 선정했다. 이와 동시에 방 의장과 BTS가 타임의 표지를 장식했다. 타임은 하이브의 성공 요인으로 글로벌 팬 커뮤니티 ‘위버스’ 운영, 대체불가능토큰(NFT) 사업, 오리지널 스토리 사업 등 음악 시장의 가치 사슬을 확장하는 사업 구조를 꼽으면서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티스트와 음악 지식재산권(IP)에 기반한 360도 전방위적인 사업을 전개하며 디즈니 같은 IP 홀더 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방 의장은 “하이브의 핵심인 음악과 아티스트 IP의 영향력”이라면서 “음악에 기반한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라고 밝혔다.

K-팝 그룹 최초로 두바이, 아부다비 등에서 공연을 열었던 SM은 중동 지역의 잇단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이수만 SM 총괄프로듀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초청으로 지난달 23∼24일 리야드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하이파 빈트 모하메드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공주 겸 관광부 차관, 파이잘 알 이브라힘 기획재정부 장관, 하메드 빈 모함마드 파예즈 문화부 차관 등과 만난 이 프로듀서는 K-팝 콘텐츠 제작 노하우 등에 대한 컨설팅을 해주고 다양한 협력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원 한양대 실용음악학과 교수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K-팝 가수들은 BTS처럼 자기 서사를 갖춘 세계관을 통해 아티스트의 면모를 강조하고,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면서 “이와 동시에 K-팝 기획사들은 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새로운 콘텐츠를 공급하는 플랫폼 회사로 진화해야 한다. 또한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으로 거듭나면서 원천 IP를 확보해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