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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포커스 - 러의 침공이후 한달… 현지 3人 인터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4일로 한 달이다. 우크라이나 인구 약 4분의 1가량인 1000만 명이 집을 떠나 피란민이 됐고, 무고한 민간인 977명이 숨졌다. 실제 사망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남부도시 멜리토폴과 헤르손은 이미 러시아에 넘어갔고, 벌써 3주 넘게 포위돼 맹공을 받고 있는 마리우폴이 조만간 함락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수도 키이우(키예프)와 제2의 도시 하르키우는 ‘결사 항전’을 택한 우크라이나인들 덕분에 버티고 있지만, 러시아는 점점 더 민간인에게 총부리를 겨누며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전장 속에서도 조국에 남아있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키이우와 하르키우에 남은 우크라이나인 3명을 지난 21∼22일 줌(Zoom) 및 전화 인터뷰로 만났는데, 이들은 “남겨진 게 아니다. 우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 이 기사는 조윤동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우크라이나 지회장과 김이고르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장의 도움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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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이우 연극배우 레나

“폭발음 들리면 마음도 산산조각…청년들, BTS 노래 들으며 위안”

◇“우리는 ‘하나의 주먹’…오고 가는 도움 속 연대와 사랑 느껴”…“BTS는 큰 위로”

키이우에 남은 사람은 약 200만 명. 키이우 인구의 절반가량이다. 절반은 피란을 떠났고 절반은 남은 셈이다. 이들은 왜 떠나지 않았을까. 키이우에서 극단을 운영하며 배우를 겸하는 레나 이반첸코(54) 씨에게도 러시아군의 폭격은 두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그녀는 “먼 거리, 가까운 거리에서 모두 폭발이 이어지고 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건물들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폭발음이 들릴 때면 내 마음도 함께 폭발해 산산조각이 나는 느낌이다. 겁도 많이 나고 두려움도 드는 게 사실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그녀가 키이우에 남은 것은 86세의 친정엄마를 모셔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반첸코 씨는 “극단 단원으로 있는 10∼20대 젊은이들이 남겠다는데 내가 남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키이우뿐 아니라 마리우폴 등 더욱 위험한 도시들에 있는 10대 아이들과도 온라인으로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전쟁터에서 직접 빼내 올 수는 없지만 나는 너희와 함께 있고 너희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들에게는 치유가 될 수 있다는 것.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서로 돕는 모습을 보며 어느 때보다 ‘연대’와 ‘사랑’의 힘을 크게 느낀다고 그녀는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방탄소년단(BTS)은 큰 매개체로 작용하는 동시에 위로가 된다고 한다. 역시 BTS 팬인 그녀는 “전 세계의 BTS 팬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면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적 가수인 BTS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전 세계에 보여주고 반전의 메시지를 던진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BTS와 K-팝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던 그녀였지만 키이우의 함락 가능성 등 전황에 대해선 아주 진지한 자세로 돌아섰다.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잘 버티고 있지만 결국 키이우가 러시아에 함락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는 질문에 그녀는 “그럴 가능성은 1%도 없다.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면서 “키이우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우리의 ‘원수’가 절대 키이우를 뚫지 못하게 하겠다는 마음이다. 우리 도시는 반드시 우리가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국민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그녀는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항상 이웃 국가들이 탐내는 곳으로, 침략 시도가 많았다. 그러면서 우리 국민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에 순응하기보다는 대항하는 성격을 갖게 됐다. 외부에서 침략자가 들어온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나의 주먹’이 된다. 그건 우리 우크라이나 국민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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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르키우 선교사 서진택

“시가전 잔해 말끔하게 정리돼…우크라 정부군 비교적 잘 대응”

◇“우크라이나 처지 한국과 같아…여러 세대 걸쳐 아픔 지속될 것”

유선으로 어렵게 연락이 닿은 서진택(30·오른쪽 두번째) 선교사는 “지난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늘까지 4일째 전기가 끊겨 발전기를 사러 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의 침공 이전부터 살고 있던 동북부의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인인 아내와 2세·4세의 두 아들, 장모님, 장인어른과 함께 머물고 있다. 서 선교사는 “전쟁 초반에도 전기가 끊길 때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복구 작업에 시간이 좀 걸린다”면서 “(전력 공급 시설이) 크게 손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서 선교사는 “인터넷 신호가 조금 약해지기는 했지만, 물·가스는 잘 공급되고 유선 통화에도 문제가 없다”며 현지 일상을 덤덤하게 털어놨다. 그는 “전쟁 첫날 이곳을 떠난 옆 동네 가게 주인이 피란 간 지 일주일쯤 됐을 때 연락이 와서 가게 열쇠와 창고 위치를 알려주며 음식을 가져가라고 했다. 이분이 화물차도 제공해줬다”며 “근처에 큰 교회가 있는데 그곳 목사님께서 서쪽 지방으로부터 구호품을 많이 받고 있어 차로 이동해 가서 나눠 받고 있다”고 했다. 인명 피해 상황과 관련해 서 선교사는 “제가 다니는 교회 성도 중에 16세 청년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사망하셨고, 알코올중독이 있으셨던 40대 성도 한 분도 전쟁이 난 후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나머지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그는 “시가전이 잦았지만, 포격을 받은 하르키우 문화센터 등에 가보면 유리 조각 등 공격의 잔해가 말끔히 정리돼 있더라”며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비교적 잘 대응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이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을 통해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2003년부터 우크라이나에서 20년 가까이 머물며 사역해 온 서 선교사는 “우크라이나는 한국처럼 서방과 동방 사이에 낀, 다리 역할을 하는 나라”라면서 “정부군은 충분히 잘 싸워주고 있다. 나토 가입 등에도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북한과 남한이 같은 민족이듯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같은 슬라브족인데 전쟁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면서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아픔이 지속될 것 같다”는 심경도 함께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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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이우 태권도사범 안드레이

“돈바스 내전때 키이우로 피란…끝까지 승리, 삶의터전 지킬것”

◇“두 번째 전쟁, 여전히 이해할 수 없어…중립 외교 한편엔 희생자 있음을 잊지 말길”

키이우에 거주하는 고려인 안드레이 최(58) 씨에게 이번 전쟁은 인생에서 두 번째다. 우즈베키스탄 태생으로 15세 때부터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에서 살아온 그는 2014년 돈바스 내전이 터진 뒤 낯선 곳 키이우에 다시 정착해야 했다. 그랬기에 그는 삶의 터전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그래서 키이우를 떠나지 않았다. 최 씨는 “이번 전쟁이 발발하고 안전한 곳을 찾아 2주 정도 집을 떠나 떠돌았다. 하지만 도네츠크에서 키이우로 피란할 때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올랐고 키이우에 남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전쟁이 나기 전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태권도장을 운영해온 그는 키이우에 남기로 결정한 후 시민방위군에 지원하고 몸이 약한 고령자들에게 음식과 의약품 등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13세와 10세, 9세짜리 자녀들과 함께하는 상황은 쉽지 않다. 그는 “전쟁을 처음 겪는 이들은 지하실에 들어가서 숨고 그러던데 우리 가족은 도네츠크에서 한 차례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이제 먼 곳에서 나는 폭발음은 신경도 안 쓰는 경지에 이르렀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지금 갖고 있는 마음은 ‘끝까지 우리의 원수를 이겨내겠다’는 마음뿐”이라며 “끝까지 승리해 이곳을 지키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35년 동안 도네츠크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그에게 러시아의 요구대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인정해야 전쟁이 끝날 거라는 분석도 있다고 조심스레 물었다. 이에 그는 “그 사안에 대해서는 답하기가 매우 어렵다. 난 지금 정확한 답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돈바스 내전이 왜 일어났는지, 상황이 왜 그렇게까지 악화했는지, 지금 전쟁은 또 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그저 내가 바라는 것은 평화일 뿐”이라고 말했다.

고려인인 그는 “많은 고려인이 피란을 떠났고 현재 키이우에 남은 고려인은 약 100명 정도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 거주하는 고려인은 약 3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역시 전쟁의 참화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사는 고려인 동포가 전란을 피해 우리나라에 입국하는 사례들도 나오는 가운데 최 씨는 역사적 조국인 한국이 우크라이나 고려인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면서 “한국을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가 외교적 문제 등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는데 중립 전략을 가진 국가들은 그로 인해 어느 한쪽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세희·장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