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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모험│이희재 지음│교양인

2018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신직업’ 보고서에는 인공지능(AI) 기술 발달로 위기에 처한 직업 가운데 통·번역가가 포함돼 있다. 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있거나 진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30여 년 동안 한국어의 개성을 살리는 번역을 모색해 온 이희재 번역가가 새 책 ‘번역의 모험’에서 기계 번역 시대에 살아남는 법을 말했다. “단순히 이 말을 저 말로 옮기는 좁은 의미의 번역가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현실을 말로 제대로 담아내는 넓은 의미의 번역가를 지향해야 한다.”

저자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번역’이란 ‘문턱이 낮은 한국어’로 옮기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문턱이 낮은 글은 독자가 편히 정주행하도록 돕는다. 얼른 와 닿지 않거나 모호한 대목 앞에서 독자가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다시 뜻을 살피려고 역주행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를 위해서는 번역가가 가까운 말들을 모아주고 요소요소를 찔러주고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 쉼표 남발로 글이 끊기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책에는 이렇듯 요긴한 원칙이 ‘쉼표’ ‘모으기’ ‘찌르기’ ‘흘려보내기’ ‘맞추기’ ‘낮추기’ ‘살리기’ 등으로 정리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번역가와 그 지망생을 위한 지침서 정도로 치부한다면 이는 반쪽짜리 평가에 불과하다. ‘문턱이 낮은 글’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저자는 한국어의 문턱을 높이는 요인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특히 맞춤법에 대한 과도한 강조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기독교 세계에서 신의 말을 오해의 여지 없이 정확히 옮기기 위해 고안된 쉼표가 한국어 번역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남발돼 독자들의 이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띄어쓰기는 모든 단어를 붙여 씀으로써 발생하는 모호함을 피하기 위해 조선 후기 서양 선교사들 주도로 시도됐는데, 이제는 너무 강조되면서 글 쓰는 일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이시옷 역시 불필요한 된소리 발음을 낳고,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기 어렵게 만든다.

저자는 언어의 문턱을 낮추는 것은 소통과 평등을 지향한다고 말한다. “문턱이 낮은 글이 좋은 글이고 문턱이 낮은 사회가 좋은 사회다.” 문턱 낮추기는 비단 번역가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302쪽, 1만6800원.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