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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보건의료 분야

지난해 시장규모 1520억 달러
빅데이터·인공지능 활용하는
원격의료·정밀 의료서비스 등
4차산업혁명은 의료분야 집중
현재 시스템은 시장확대 한계

대형병원·기업 연계로 흐르면
소수 부유층만 혜택 받을 우려
형평성 중심 정책으로 보완을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 초연결·초융합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처음 등장한 이후 인류는 다가올 디지털 시대의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왔다. 급격한 변화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는 물론, 차세대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지난 1년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면서 기가급 속도로 빨라졌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생소했던 재택근무가 일상화됐으며, 학교에선 원격수업이 활발해졌다. 비대면 시대를 맞아 원격의료의 중요성도 높아졌고, 신개념의 코로나19 백신 개발로 미래 신산업으로 주목받던 바이오헬스산업은 선진국에선 주요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변화가 다양해지면서 사회 갈등의 양상과 폭도 깊어졌다. 이는 사회 구조 전반에 영향을 끼치면서 그동안 일자리 감소, 신산업 육성 중심으로만 대응해 왔던 정부 정책에 수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문화일보는 아산사회복지재단과 공동기획을 통해 디지털 시대 사회구조 변화를 살펴보고 정책적 대응 방안에 대해 3회에 걸쳐 모색한다.

보건의료분야는 4차 산업혁명의 적용이 가장 활발한 분야다. 그동안의 보건의료가 단순히 수명의 양(量)인 기대수명의 연장에 초점이 있었다면, 이제는 삶의 질, 즉 건강하게 오래 사는 수명의 질(質)인 건강수명을 중시하게 됐다.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의료기술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헬스케어 영역에 새로운 패러디임을 가져오고 있다. 각기 다른 유전체 정보, 빅데이터 등을 AI가 분석하는 기술융합은 개인의 특성에 따른 최적의 치료가 가능해진다. 글로벌 선진국들은 앞다퉈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개발해 건강증진부터 검사와 진단, 발병의 예측, 치료 등 보건의료의 전 영역으로 적용을 확대해 가고 있다.

다만, 글로벌 추세와 달리 국내에서는 현행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의 ‘의료행위’만을 인정하고 있어 의료패러다임 변화의 폭은 매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최첨단 기술이 적용되더라도 보건의료산업은 기본적 신체정보, 혈압체크, 혈당체크 등과 같이 기존의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활용될 수 있는 탓이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지원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의 법적 쟁점과 과제’ 연구를 수행한 이호용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는 편리한 삶과 특히 의료분야에 집중돼 있으며, 정확하고 전문적인 의료서비스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매우 크다”며 “건강문제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가장 중요한 화두로, 여기에 AI를 비롯한 다양한 도구들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인간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건강한 인류의 삶을 유지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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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헬스케어 촉진의 필요성 = 디지털 헬스케어는 피할 수 없는 신산업이다. 시장조사업체 GIA(Global Industry Analysts)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 헬스 산업은 지난해 15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인 4330억 달러의 35%에 해당한다. 성장세는 더 늘어나 2027년에는 관련 사업 규모가 5080억 달러 규모로 늘어나 현재 반도체 시장 규모를 능가할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 편의성도 높인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대표주자인 원격의료는 온 국민에게 동등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 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오지나 벽지에 있는 환자도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부각되고 있다. 정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도 촉진을 부른다. 이를테면 IBM에서 개발한 암진단 AI 소프트웨어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는 데이터베이스에 종양학과 관련된 전문 지식과 의학 학술지 300개, 의학서 200개 등 1500만 쪽 분량의 의료 정보가 구축돼 있다. 이를 활용해 의사가 환자의 정보를 입력하면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성공률이 높은 치료법을 제안받을 수 있다. 몇몇 특정 분야에서는 숙련된 전문의보다 더 정확히 암을 진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또 AI는 진료 후 발생할 수 있는 의료과실을 방지하기 위해 방어적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와 달리 확립된 표준 진료를 시행할 수 있다. 또 과잉 진료나 과잉 검사 등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측면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이를 위해 디지털 헬스케어는 현행법상 의료행위를 의료인에게 한정하는 현재의 시스템에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사와 환자의 단편적 구조로는 향후 의료산업발전에 한계를 가져올 수밖에 없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에 보조를 맞추지 않으면 의료의 산업적 발전뿐만 아니라 그에 부수하는 의료 서비스 발전도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개선해야 할 사항도 많아 = 무분별한 촉진은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가 전 국민에 대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일부 국민을 소외시킬 수도 있다는 견해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비용이 수반되는 신기술이 많아, 결국 대형병원이나 대형기업과 연계돼 부유층 소수에게만 혜택이 되는 서비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왓슨과 같은 AI가 ‘스스로 결정’해 인간을 치료하는 것에 대한 윤리문제도 나온다. AI는 무질서하게 펼쳐져 있는 다양한 영역의 빅데이터 속에서 질서와 의미를 찾아 스스로 사고하면서 결정한다. 인간만이 수행해 오던 판단과 의사결정을 AI가 하는 것은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AI는 의사의 판단을 보조하는 도구일 뿐, 의사의 판단력을 대체하기에는 여전히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공공적 특성을 가진 의료서비스를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유로 시장 논리에 그대로 맡길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가 개입하고 필요한 경우 국가가 직접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는 의료시장의 특성상 소비자와 서비스의 특성이 모두 달라 일반 시장의 원리가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비는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환자와 의사 간 계약의 지위는 점차 격차가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서 일반 시장의 작동원리를 상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이다.

이 교수는 “ICT 서비스 발달의 흐름은 걷잡을 수 없고, 이 산업을 중심으로 한 국가경쟁력은 국력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국가 전체의 입장에서 디지털 헬스케어에 대한 진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그것이 부유한 소수자들을 위한 것이 되지 않도록 비판하고 보완을 요구하는 것이 국민의 몫이며, 산업발전 측면만 보지 않고 빈곤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보건의료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국가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문화일보 · 아산사회복지재단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