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임신중절 권리가 47년 전 합법화됐으나 현재까지 찬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오는 11월 3일 예정된 미 대선의 쟁점이기도 하지만, 지난 9월 타계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 후임에 낙태를 반대하는 여성 후보가 지명되면서 12일(현지시간) 개시된 인준청문회에서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 향후 대법원에서 낙태권 허용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에서 낙태 금지 및 제한이 폐지된 것은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 이후다. 1969년 노마 매코비라는 여성이 텍사스주에서 임신중절 수술을 거부당한 후 이듬해 신변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사용해 헨리 웨이드 주 법무장관을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는데, 대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 대법원은 임신중절을 처벌하는 대부분 법률이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 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헌법적 권리’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태아가 자궁 밖에서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출산 직전 3개월간은 임신중절 수술을 금지했다.

이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보장받게 됐지만, 일부 주에선 낙태를 제한하는 다양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임신중절 수술을 받는 데 필요한 과정을 복잡하게 하고, 수술하는 병원에서 유지해야 하는 시설·위생 기준을 대폭 강화하는 조항을 넣은 것이다. 이 때문에 연방 대법원에는 각 주가 시행하는 낙태 제한 법안의 위헌 여부를 묻는 소송이 잇따라 올라왔다. 루이지애나주가 ‘안전하지 못한 낙태 방지법’을 통해 임신중절 수술 자격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한 게 대표적으로, 대법원은 지난 6월 해당 법이 헌법상 부여된 여성의 임신중절 권리를 제한한다며 ‘위헌’ 판결을 했다. 반면 1992년 임신중절 옹호단체인 가족계획연맹이 펜실베이니아주의 낙태 제한 규정에 소송을 제기했을 때 대법원은 낙태 반대 진영에 힘을 실어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대법원이 대법관 구성에 따라 다소 뉘앙스가 다른 법률적 판단을 해온 셈이다.

이 때문에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층 결집을 위해 낙태 반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히 진보 성향의 긴즈버그 전 대법관 후임을 임명하면서 낙태 반대에 소신을 가진 에이미 코니 배럿 판사를 신임 대법관으로 지명한 것. 백악관과 공화당은 오는 11월 대선 전까지 배럿 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인준을 마치겠다는 입장이다.

정유정 기자 utoo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