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20일 정부서울청사 앞 인도에서 운동화 끈을 묶고 있다. 신창섭 기자

■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코로나 국면서 행정부처 역할
과거 그 어느때보다 중요해져
공무원 복지부동땐 국민 불편
국가적 위기 정부 적극 나서야

청탁금지법 시행 4년간 성과
공직기강 확립·청렴도 제고돼
입법사각 해소 위해 법 개정중
신고자 보호 조치 등 강화할것

지난 6월 26일 국민권익위원장(장관급)에 임명된 전현희 위원장은 요즘 운동화를 신고 다닌다.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 발로 뛰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실제로 취임 이후 50여 일간 전국 현장을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답은 현장에 있다”였다. “뛰는 만큼 피드백이 와서 신나게 일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위원장이 너무 열심히 일해서 직원들이 힘들어졌다는 얘기들이 벌써부터 들린다. 전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키워드도 ‘적극 행정’이었다. 그는 “소극 행정은 일종의 부패로 볼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전 위원장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걸어온 삶 자체가 증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에 도전해 이뤄낸 성공의 경험과 자신감이 그의 몸속에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치과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그만두고 사법시험에 도전해 변호사가 된 뒤 공익소송에 앞장섰고, 진보진영이 당선되기 어려운 서울 강남구에 당당히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그는 권익위 업무에 대해 잘 모르고 부임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 하지만 어려운 사회 갈등을 해결했던 변호사와 정치인 시절 중재 경력 등이 권익위의 업무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한다. 그는 권익위가 국민이 어려울 때 찾는 신문고이자 정부가 강조하는 ‘반부패’의 컨트롤 타워가 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전 위원장을 만났다.

―취임 후 50일 정도 지났는데 소감은.

“굉장히 보람 있고, 뛰는 만큼 성과가 쑥쑥 나온다. 공무원들과 힘을 모아서 하면 정말 국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의원 시절에는 운동화를 신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뛰어다녀야 하다 보니 운동화를 신게 됐다. 일에 임하는 각오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권익위 업무에 대해 알고 온 것은 아닐 텐데.

“솔직히 권익위에 대해서 모르고 왔는데, 와서 보니까 권익위가 저한테 딱 맞춤 위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약자와 공익을 위한 활동, 사회적 갈등 조정 등을 주로 하는 권익위 업무가 그동안 제 인생 경력과 활동을 축약해서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명권자가 보는 눈이 있으신 것 같다.”

전 위원장은 쑥스러운 듯 웃었지만 그의 이 같은 발언이 여당 정치인 출신이라고 단순히 ‘낙하산’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암시처럼 들렸다. 열심히 해서 성과로 보여줄 테니 지켜봐 달라는 자신감도 엿보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긴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 느끼는 보람과 장관으로서 느끼는 보람의 차이는 뭔가.

“입법부에 있을 때는 행정부에 이런저런 정책 주문을 하고 제대로 못할 때 비판과 견제를 해왔다. 행정부는 정책을 실질적으로 집행하고 실행하는 기관이니까 아무래도 실행 속도가 빠르다. 어제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협의한 사안이 그다음 날 즉각적으로 피드백이 온다. 올바른 마인드와 추진력만 있으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곳이다. 같이 일하는 권익위 공무원들은 정말 훌륭하고 사명감이 크다고 생각한다. 국민으로부터 감사 편지가 쏟아지는 곳이 권익위다. 제가 취임하고 나서도 권익위 조사관 등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고충을 상담하고 해결해주니 많은 민원인에게서 ‘나라가 우리를 위해서 뭘 해주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는 내용의 편지가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 감사 편지를 받은 직원들을 만나 격려해주고 너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부임 이후 강원 양구 접경지에서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무주지(주인 없는 땅) 문제도 해결하고 용담댐 수해 현장에도 가는 등 중재를 많이 하러 다녔는데, 중재에서 중요한 건 무언가.

“정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해 당사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협의하는 게 조정이다. 법원의 판결보다 훨씬 고도의 노력이 필요한 분야다. 권익위는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데 특화된 기관인 것 같다.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고,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화로 소통하다 보면 풀리지 않던 것도 풀린다. 권익위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언급한 접경지 무주지 문제는 6·25전쟁 이후 무주지에 정책적으로 이주를 시키면서 경작을 하면 10년 후 땅을 주겠다고 했는데 구두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지 70년이 지났다. 관련 부처가 9개나 되는 이 사안을 3년간 줄기차게 노력한 끝에 조정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지난 20일 권익위가 추진 중인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다주택 공직자 사적이해 개입 가능성 커… 이해충돌방지법 시급”

법 통과땐 금전거래 등 소속기관장에 반드시 신고
가족채용·수의계약 체결 등 비리 근절 기대

성비위 피해자는 사회적 약자 위치… 신고 꺼려
변호·신변보호 통해 불이익 없도록 지원

권익위는 신문고… 힘든 사람들 문 두드리는 곳


―대한항공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둘러싼 서울시와의 갈등도 권익위가 중재에 나섰는데.

“기업고충팀에서 사안을 다루고 있다. 서울시와 대한항공이 주장하는 바가 첨예하게 대립한다. 이 문제는 공익과 사익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재판이나 소송으로 가면 시일이 오래 걸린다. 대한항공이 절박한 상황인데 시간적인 문제가 있고 서울시는 공적인 시각으로 추진하려는 당위성이 있다. 조금씩 양보해서 조정을 이뤄낸다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적극 행정’은 부임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인가.

“‘적극 행정’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행정부처의 역할이 굉장히 커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무원들은 이른바 복지부동, 법령 규정에 없으면 안 하고, 있어도 거기에만 맞춰서 하다 보니 실질적으로 국민이 불편을 겪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인 만큼 정부가 즉각적으로 나서서 국민 불편을 해소해야 한다. 전 부처가 적극 행정을 펼치고 있다. 권익위는 공기업을 평가하는 역할도 하고 있고, 저도 취임사에서 적극 행정을 강조했다. 소극 행정은 일종의 부패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저도 발로 뛰고 있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고 국민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법률 규정에 얽매여서 하지 못했던 것을 많이 하고 있다.”

―권익위 하면 떠오르는 법률인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사문화됐다는 말도 나온다. 법이 시행된 지 4년이 돼가는데 어떻게 보나.

“청탁금지법은 ‘3(음식)·5(선물)·5(경조사비)’ 기준이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도입 당시 반대도 있었지만, 국민의 높은 관심과 지지 속에 제정된 청탁금지법은 시행 후 공직사회 기강을 확립하고 국가 청렴도를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해 8월 인식도 조사에서도 일반 국민의 87.7%, 언론인 79.2%, 공무원 96.6%가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답했다. 권익위에서 공직사회 부패평가를 하는데 금품수수와 관련한 부패행위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청탁금지법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법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부정청탁 관련 비리가 증가하는 추세다. 입법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청탁금지 유형은 14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학위 수여, 논문 심사, 교도관 교정행정 등이 규정돼 있지 않다. 이런 부분도 청탁금지 대상에 추가로 포함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신고자가 신분이 노출되면 소속 기관이나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신고를 꺼린다. 신고자 보호 조치를 계속 강화하는 중이다. 비실명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변호사를 지원해주는 비실명 대리 신고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권익위가 변호사 비용을 지원해 신고자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4956만 원어치 금품을 수수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이 일반뇌물죄에 비해 형량이 가벼운 게 아니냐고도 질문해 봤다. 전 위원장은 “그 사건은 재판이 진행 중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라 제가 응답하기 적절치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공직사회에 부정부패가 남아 있고 많은 국민이 우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래서 권익위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권익위의 기관 명칭이 ‘부패방지국민권익위원회’로 바뀌는데, 설립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나.

“‘부패방지국민권익위원회’로 명칭을 바꾸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권익위가 뭐하는 기관인지 모르는 국민이 많다. 권익위는 국가청렴위원회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무총리 행정심판위원회 등 3개 기관이 합쳐진 기관이다. 부패방지가 주요 업무인데 부처 이름에서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반부패 정책협의회가 문 정부 출범 이후 16번 열렸다. 대통령께서 의장으로 주재하고 권익위가 간사 기관이다. 법무부, 검찰청, 경찰청 등 부패 사정 기관들이 참여하는 기구다. 반부패가 중요한 국정 과제인데, 권익위가 간사 기관으로서 실질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반부패 등에 대한 기준 평가도 하고 의제(어젠다)도 개발한다. 권익위가 명실상부한 컨트롤 타워가 되려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부패 영향 평가, 청렴도 평가 등 정부 기관을 평가하고, 부패 신고와 관련해 조사도 하고 수사 기관에 이첩해서 조사 처벌까지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권익위가 조사권은 없는 걸로 안다.

“솔직히 권익위의 사실관계 확인 기능이 미약하다. 조사해서 피신고자도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신고자 접수 내용에만 의존해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밖에 없는데 피신고자 의견 진술이나 확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사권이 필요하다고 보고 제도 보완을 추진 중이다.”

전 위원장은 부패방지법 제정 당시의 두 축이었던 청탁금지법 외에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의 국회 통과를 강조했다. 현재는 법으로 반영되지 못하고 공무원 행동강령으로 시행되고 있다.

―‘공직자 이해충돌방지법’이 20대 국회에서 회기 만료로 폐기돼 21대 국회에 다시 제출됐는데 어떤 내용인가.

“공직자의 직무에 사적 이해관계가 개입될 경우 직무수행의 공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고, 공직사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이해충돌 상황을 사전에 관리해 부패 발생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는 이해충돌방지법안은 공직자들이 이해충돌 상황에서 지켜야 할 8가지 구체적인 행위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우선, 공직자가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나 가족의 이해관계가 개입될 경우 그 사실을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하고 그 직무를 회피하게 함으로써 특혜 소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직무 관련자와 금전이나 부동산 등을 거래하려는 경우에도 미리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해야 하고, 직무상 비밀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행위도 엄격하게 금지된다.”

―고위공직자와 일반공직자 간 다른 규정이 적용되나.

“그렇다. 고위공직자의 경우에는 다른 공직자보다 훨씬 강화된 이해충돌방지규정이 적용된다. 고위공직자는 그 직위에 임용되거나 취임하기 전 3년 동안 민간부문에서 활동한 내역을 제출해야 하고, 소속 기관장은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있다. 또 공공기관은 소속 고위공직자의 가족을 채용하거나 고위공직자의 배우자 등과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엄격하게 제한된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되면 공직자들이 공적 직위나 직무상 권한을 악용해 부정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최근 고위공직자 다주택자 문제도 이해충돌 측면에서 다뤄야 하지 않나.

“다주택자라고 해서 무조건 이해충돌이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충돌 가능성은 커진다고 본다. 조금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다주택자가 부동산 정책에 관여한다면 엄격하게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직무 관련자가 부동산 관련 거래를 할 경우 신고 등 사적인 이해를 위해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전 위원장은 최근 끊이지 않는 성비위 사건과 관련한 공익 신고자 보호 조치에도 힘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신고자 보호를 위한 적극 행정 차원이라고 했다.

―고위공직자 성비위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는데.

“권익위 주요 임무 중 공익 신고자 보호가 있다. 성비위 피해자의 경우 신분 노출을 두려워하고 관련 직장에서 불이익, 사회 여론으로부터 불이익에 대해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처한다. 공익 신고자 보호 조치를 해서 비실명 대리 신고를 통해 변호사를 지원하고 신분을 보호하고 있다.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 징계 부분이 원상 회복되도록 조치한다. 경찰 신변 보호 기능도 있다. 공익 신고자 보호 조치는 법에 규정된 공익 신고에 한해 할 수 있다. 현재 아동복지법이나 청소년보호법,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른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나 폭력 등 학대행위에 대해 공익 신고가 가능하다. 또 공익 신고자 보호법 개정에 따라 공익 신고 대상 법률이 대폭 확대돼 올해 11월 20일부터 성폭력처벌법상의 성폭력범죄 신고자까지 보호가 가능해진다.”

전 위원장은 “권익위는 신문고다. 억울하고 힘든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는 곳”이라고도 했다. 권익위 업무를 한 줄이라도 더 소개하려는 그의 ‘적극 인터뷰’가 ‘적극 행정’ 못지않았다. 전 위원장은 그의 이력에 쓰일 다음 행보를 묻는 질문에 “지금은 계획이 없다.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한다는 게 의미 있고 그 일이 사회나 국가에 보탬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잘못한 게 있으면 가장 먼저 스스로가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쓴 책 ‘살아가는 동안, 지치지 않도록’(2016, 웅진윙스)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큰 절망은 꿈을 포기하는 것, 나의 도전은 꿈이 다하는 날까지 멈추지 않는다.’

인터뷰 = 방승배 정치부 차장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