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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권 말기 ‘레임덕’
文, 여전히 영향력 막강… 獨走 고집 땐 ‘부메랑’

정책 실패·지지율 하락 등에
측근·인척 비리 겹쳐 발생해

YS, 차남 현철 비리의혹 확산
DJ, 이용호 게이트 등이 촉발
盧, 인사 갈등·지방선거 참패
MB, 여당과 감사원장 등 갈등
朴, 최순실 국정농단 터져나와

文대통령의 4년차 증후군은
“이미 힘 빠지는 징후 있지만
코로나·총선 압승에 가려져”
내년 4월 재보선 정국 변곡점

8월에 접어들면서 2017년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3분의 2가 지났다. 60개월의 대통령 임기 중 40개월째를 맞이했다.

1987년 이후 역대 정권들은 모두 이때쯤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파르게 떨어지느냐, 얼마나 힘이 빠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대통령의 리더십이 큰 위기에 직면하는 ‘집권 4년차 증후군’을 피해간 정권은 없었다.

집권 4년차 증후군은 권력 내부에서 각종 비리가 터져 나오고, 여론에 민감한 여당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다.
대부분 정권에서 강한 사정을 실시하고 새로운 국정 과제를 던지며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관료 사회의 동요가 일어나고 야심 차게 내놓은 정책이 실패하는 등 권력 누수 현상만 심화하며 결국 집권 말기 레임덕으로 이어지게 된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대통령 임기는 3년 6개월’(김형준 명지대 교수)이라고 말할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같은 전례를 답습할 것인가. 지난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압승으로 ‘문재인은 다르다’는 가능성을 보였지만, 최근 여권의 독주는 민심 이반을 불러 결국 역대 정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5년마다 반복된 ‘집권 4년차 증후군’=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3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집권 후반기 레임덕까지 가는 과정에서 인사 실패로 인한 지지율 하락, 정책 실패, 친인척 또는 측근 비리 등 세 가지는 공통적인 패턴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집권 4년차 증후군 중 정권에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것은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가 터지는 경우다. 노태우 정권 때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이 불거진 것은 집권 4년차 1월이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백두 비리 사건이 집권 4년차에 불거졌고, 이 무렵부터 차남인 김현철 씨를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계에 파다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현준·진승현·이용호 게이트 등 ‘권력형 게이트’가 임기 3분의 2 시점을 전후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권력의 핵심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연루된 의혹이 집권 4년차에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4년차에 최순실 관련 의혹이 하나씩 터져 나오기 시작해 결국 만 4년을 채우지 못하고 2016년 12월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됐다.

대통령 입장에서 집권 4년차 증후군을 절감하는 부분은 여권 내 반발이다. 더이상 대통령의 ‘영(令)’이 서지 않게 된다. 이명박 정부 때 한나라당 지도부가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의 사퇴를 주장한 것은 막 집권 4년차에 들어설 무렵이었다. 마찬가지 시점에 노무현 정부 때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의 임명 강행에 대해 열린우리당 내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집권 4년차 내내 열린우리당과 노 전 대통령 간 갈등이 이어지고 신당 창당설이 거론됐다. 집권 4년차 증후군의 대표적 ‘증상’이자 시발점은 전국 단위 선거의 패배다. 박근혜 정부가 기울기 시작한 시점은 압승을 예상했던 2016년 국회의원 총선거의 패배다. “질 수 없다”던 선거에서 지며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2006년 지방선거 참패가 있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0·26 재보선에서 수도권 참패로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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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통합당 관계자는 “겉으로 잘 드러나진 않지만 정권 입장에서 가장 뼈아픈 것은 관료 사회가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이라며 “정권이 강한 사정을 추진하지만, 이는 거꾸로 ‘늘공’(직업 공무원)의 동요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일했던 관계자도 “집권 후반기 야심 차게 새로운 국정 과제를 내놓지만 이미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은 시작됐고, 심지어 차기 권력에 줄을 대는 공무원도 태반이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관료사회의 이반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각 부처의 청와대 파견 거부다. 집권 초에는 고위공무원들이 앞다퉈 청와대행을 자처하지만, 임기 말이 될수록 청와대 파견 공무원들은 부처 복귀를 희망하고 반대로 부처에서는 최대한 청와대 근무를 피하려 한다. ‘전 정부 사람’으로 찍히는 것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는 것을 5년 단위로 체감해온 결과다.

◇文 정부는 다를까 = 문재인 정부가 이 같은 ‘집권 4년차 증후군’에 빠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곧 시작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관측이 나오지만 지난 4월 총선 압승과 여전한 당·정·청의 견고한 대오 등을 근거로 상당히 늦춰질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일단 총선 압승으로 집권 4년차 증후군을 상당 기간 늦출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4월 총선은 문 대통령을 옹호하는 선거냐 비토하는 선거냐, ‘문재인’을 중심으로 이뤄진 선거였다”며 “그렇게 얻은 거대여당의 힘이 여전하고 문 대통령과 여당이 다른 목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 만큼 집권 4년차를 지나며 레임덕에 접어들 것이라고 도식적으로 이야기하기는 힘들다”고 전망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이미 정권의 힘이 빠지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총선 승리가 이 같은 위기가 가시화되는 것을 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8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의 교체 혹은 내년 대통령선거 후보 레이스 돌입 등이 변곡점이 돼 정부의 힘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을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김형준 교수는 “8월 민주당 대표 경선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충돌할 가능성이 생긴다”며 “자꾸 지지율은 하락하고 여권 내에서 미래 권력에 줄 서는 상황이 생기면 걷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 연구소 연구원은 “대권 경쟁 시점까지는 청와대가 여권의 중심이 될 수 있지만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불가피하게 문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거나 현 정권과 차별화하려는 시도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동안 가려왔던 부조리가 드러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 친문(친문재인) 인사는 “여권 내에서 차기 권력이 현 정권에 각을 세우는 구도로는 전개되지 않을 것”이라며 “여권 내 문 대통령의 영향력이 여전한 만큼 문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자연스레 승계하는 양태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지부진한 야권의 실태도 문 대통령이 여전히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가는 요인 중 하나다.

집권 4년차 증후군의 ‘증상’이 문 정부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우선 라임이나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관련 비리에 정권 실세들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다. 한 통합당 의원은 “문 정부가 기를 쓰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차지하려 하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만들려 하고 검찰의 힘을 빼려 하는 것은 자신들의 비리 수사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총장, 최재형 감사원장 ‘찍어내기’ 논란도 부메랑이 돼 정권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총선 압승 후 차기 대선 전까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만큼 문 정부가 ‘한국판 뉴딜’ 등 대형 국정 과제를 끌고 가려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사퇴로 서울·부산 시장이 포함된 보궐선거를 내년 4월에 치른다. 예상치 못했던 전국 단위 선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정국의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일단 문 대통령이 집권 4년차 증후군과 이에 따른 레임덕을 피하기 위해 내놓은 카드는 새로운 국정 과제 제시와 인적 쇄신으로 보인다. 한국판 뉴딜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 극복과 맞물려 제시했지만 문 정부는 이를 더 확대해 아예 신산업을 구축하고 산업 생태계의 전환까지 이뤄내겠다는 각오다. 관료사회와 정치권, 지방자치단체까지 한국판 뉴딜 추진을 위한 ‘협의체’ 틀로 묶은 것은 장기적으로 문 대통령 중심의 여권 내 권력 구도를 유지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추가적인 청와대 개편 및 개각 가능성도 열려 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