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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허수경 산문 ‘오늘의 착각’

“착각이라는 상태에 대한 처방전이 있을 리가 없고 있을 필요도 없다. 착각은 우리 앞에 옆에 뒤에 그리고 언제나 있다. 방향을 가리키는 전치사와 후치사 사이에 삶은 있다가 간다. 방향을 잃는 것은 인간의 일이다.”(116쪽)

고 허수경(1964∼2018) 시인의 생일에 맞춰 출간된 유고 산문 ‘오늘의 착각’(난다)은 제목 그대로 ‘착각’에 대한 이야기다. 착각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도,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다만 ‘공존’한다. 모든 인간이 숙명처럼 지니고 있는 이 ‘상태’는 특별히 시인에겐 “영혼에 가장 많은 잔심부름을 시키는 손님”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 착각이라는 균열, 혹은 혼돈이 시를 쓰게 하기 때문이다.

허 시인은 “착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순간, 인간의 시간은 무작정 헝클어져 버린다”면서도, “이 착란의 순간은 가장 시적인 순간”이라고 말한다. 책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시인이 문학 계간지 ‘발견’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시와 음악, 뉴스와 책 등 그는 모든 것에서 ‘착각’을 끄집어내고, 때로는 스스로 ‘착각’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난민이 됐다가, 죽은 소가 됐다가, 파괴된 유적지, 혹은 파킨슨병을 앓는 노인이 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발현된 시는 무수히 많은 ‘이입’을 불러일으키고,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한 우리는, 한 걸음쯤 더 내디뎌 볼 수 있게 된다. 시인이 먼저 떠나버린, ‘착각여관’이라는 지구 위를 말이다. 120쪽, 1만2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