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을 위해 한 여성이 PC를 통해 지원금 접수 안내문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2020 대한민국 불공정 리포트 - (19) 긴급재난지원금 불공정 논란

‘전 국민 지급’ 결정 하면서
불공정 논란은 잠재웠지만
적자국채 발행 문제는 남아
‘기부=善, 수령=惡’ 구도로
이주민·재외국민 제외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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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임원 김모(50)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100만 원을 전액 기부했다. 김 씨는 “애초부터 내가 수령할 지원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기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다만, 그는 “기부를 하면서 이렇게 기분이 별로인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일해 공동체에 책임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기부를 해왔는데, 이번 기부는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예산이 없으면 돈을 지급하지 말고, 돈을 줬으면 기부 유도로 볼 수 있는 정책을 펴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공정 논란에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 지급 = 기획재정부는 애초 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소득 하위 50%’에 재난지원금을 주는 안을 설계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지급 대상을 더 넓히라고 기재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에 ‘소득 하위 70%’로 대상이 늘어나더니, 총선 때는 전 국민 지급을 시사했고 결국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렇게 지급 대상이 확대된 것은 불공정 논란이 제기된 영향이 컸다. 코로나19 여파가 하위 계층에만 닥친 게 아닌데, 세금을 주로 내는 상위층에 재난지원금을 한 푼도 주지 않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국세청의 ‘2019년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8년도 귀속 근로소득세 연말정산을 신고한 근로자는 모두 1858만 명이었고, 이 중 다양한 면세기준과 공제를 반영하고도 근로소득세가 1원이라도 부과된 사람은 1136만 명(61.1%)이었다. 나머지 722만 명(38.9%)은 최종 결정세액이 ‘0원’이었다. 납세액으로 따지면, 국민 10%가 세금 80%를 부담하는 구조다.

4·15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이 같은 논란에 정부와 여당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일부 계층에 대해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코앞에 닥친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지적이다. 이에 정치권은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거나 하위층에 대한 선별 지급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대신, ‘유례없는 위기 상황’을 전면에 내세우며 전 국민 지급을 밀어붙였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정’은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치”라며 “불공정 논란을 키워 표를 깎아 먹을 수 있는 하위 계층 선별 지급이 그래도 바람직하다 등의 목소리가 선거철에 끼어들 틈이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학계에서는 ‘전 국민 지급’보다 기재부의 원안이었던 ‘70% 지급’이 합리적인 결정이었다는 설문 결과가 나왔다. 한국경제학회가 최근 ‘경제토론 패널’ 32명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에 대한 온라인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소득 하위 70% 가구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안’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학자는 79%,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지원’에 동의한 학자는 50%로 각각 집계됐다. 다만, 응답자 가운데 30% 정도는 “선별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 등으로 두 가지 방안에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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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 유도 황당 정책 = 재난지원금에 대해 불공정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적자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예산 문제는 그대로 남았다. 정부는 코로나19를 이유로 3∼4월에 24조 원 규모의 1·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잇달아 편성했다. 이에 올해 적자 국채 규모는 74조 원대에 이른다. 최소 30조 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3차 추경을 할 경우, 올해 적자 국채 총액은 104조 원으로 늘어난다. 적자 국채 발행액을 재난지원금 100만 원을 받는 전국 가구 수(2171만 가구)로 나누면 가구당 479만 원이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뒤 사실상 ‘기부 유도’에 나섰다. 뻥 뚫린 예산 구멍을 메우기 위해 기부라는 유례없는 정책 보완 수단을 만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지난 7일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전액 60만 원을 기부하겠다고 한 것을 시작으로 11일 여당 지도부가 “재난지원금을 신청하지 않겠다”며 기부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5대 그룹 임원들도 동참에 나섰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회식 자리를 만든 상급자가 아래 직원에게 “마음껏 주문하라”고 한 뒤, “나는 짜장”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고소득층에서는 ‘기부는 선(善), 수령은 악(惡)’이라는 구도를 정부가 짠 것 아니냐는 불만을 내놓고 있다. 국내 5대 대기업에 다니는 최모(38) 씨는 “13일에 지원금 전액을 기부하지 않고 수령했지만, 주변에는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며 “전 국민이 받아도 된다는 판단에서 돈을 줬을 텐데, 기쁜 마음으로 수령하고 소비하지 못하게 기부 유도를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주민 등 지급 사각지대 = 전 국민 지급 방침에도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주 노동자 및 인권 단체들은 위기 상황에서 이주민을 차별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결혼 이민자 등 내국인과 연관성이 높은 경우만 지급 대상자에 포함하고, 재외국민·외국인을 제외한 것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목소리를 낸다.

이 단체들은 “3월 말 기준으로 장기 체류 이주민 약 173만 명 가운데 약 144만 명은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라며 “보편성에도 맞지 않고 제도적으로 다수 이주민을 차별·배제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또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미등록 이주민에게도 가구당 1000달러 상한선을 두고 1명당 500달러의 현금을 지원한다”며 해외 여러 곳에서도 이주민을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