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참패 보수, 民心 읽을까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다음 날인 지난 16일 조경태(가운데) 미래통합당 부산 공동선거대책위원장과 부산 지역 당선인들이 통합당 부산시당 사무실에서 총선 결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④ 보수 가치 재정립

중도층 껴안지 않고서는 몰락
‘노블레스 오블리주’ 내걸고
공동체 문제 진지하게 고민을

극단 지지세력과 이제는 결별
젊은 세대로 지도부 교체 등
‘해체’ 수준 뼈 깎는 혁신해야

전국 단위 선거 4번 연속 패배, 보수 정당 역사상 최소 국회 의석수…. 미래통합당이 지난 15일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참패하며 추가한 불명예 타이틀이다. 궤멸 수준으로 몰락했다고 평가받는 보수 정치권이 활로 모색에 나서면서 ‘보수의 가치 재정립’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개인의 자유와 공공선의 균형을 추구하는 공화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등이 보수가 추구해야 할 가치로 다시 주목받는다. 이런 가치를 담을 ‘그릇’인 당 체제에 대해서는 ‘해체에 준하는 근본적인 재구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태극기 보수’로 대변되는 극단적 지지세력과 절연하고, 영남뿐 아니라 수도권 등 전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스마트한 젊은 세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정치 지형 변화에 맞춘 보수의 지향점 보여줘야” = 이번 총선을 통해 확인된 것은 진보·중도 유권자 비중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든 보수든 핵심 지지층만으론 승리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급격히 세가 위축된 보수는 중도층을 껴안지 않고서는 더 이상 정치 주도권을 쥐기 어렵다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했다. 이번 총선에서 통합당이 예상을 뛰어넘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은 것은 경기 부천병 후보로 출마했던 차명진 전 후보의 ‘세월호 막말 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며 중도층을 놓친 데서 기인했다는 분석이 많다. 통합당 관계자는 22일 “논란이 터진 직후 차 전 후보를 즉각 제명하지 못한 건 중도층보다 골수 지지층의 이탈을 더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번 총선에 불출마한 김영우 의원은 “공감능력이 ‘제로(0)’인 것”이라고 지적한 뒤 “문재인 정부의 진영 논리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역시 한쪽만 믿고 편을 갈랐다”고 했다.

‘중도층 껴안기’ 경쟁이 본격화한 상황은 보수가 기존의 가치나 이념을 뛰어넘은 새로운 지향점을 내놔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박형준 전 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기존의 보수는 자유라는 가치가 전부인 것처럼 여겼지만 지금은 자유가 필요한 사람에겐 자유를, 복지가 필요한 사람에겐 복지를 줘야 하는 시대”라며 “특히 보수도 이제는 공동체 문제를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해결할 것이냐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수 일각에서 나오는 경직된 우파 이념을 경계하고, 대중의 실제 삶에서 괴리되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보수의 정치 철학은 공공선과 지배당하지 않을 자유, 헌정주의적인 애국심과 시민적 덕성 등으로 압축된다”고 했다. 윤 교수는 “무엇보다 보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앞장서야 한다”면서 “공공을 위한 헌신과 희생, 솔선수범과 책임 있는 자유 추구 등이 핵심 덕목”이라고 설명했다.

◇“통합당, 해체에 준하는 재구성 필요” = 우리공화당과 친박신당 등의 몰락으로 사실상 유일한 보수 정당으로 남은 통합당은 이번 총선 참패를 계기로 또 한 번 전면 쇄신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당을 해체하는 수준의 재구성이 아니고서는 다시 국민의 선택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구·경북(TK) 지역에서만 승리하는 ‘영남 정당’에서 탈피해 수도권과 전국을 무대로 하는 젊은 세대로 지도부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당내 민주주의와 상향식 공천제 등을 통해 당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념 공세 대신 실용적 정책정당으로서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는 주장도 높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구로을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김용태 의원은 “문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국민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비판하기에만 급급했다”며 패배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현출 건국대 교수는 “국민의 불만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 고역을 치르고도 통합당은 왜 변하지 않느냐는 것”이라며 “예를 들면 북한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했을 때 자유로에 드러누워 버리는 보수 세력이 과연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유진·김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