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형제시골집백반’ 아침 백반.
■ 장흥의 별미 ②
- ‘형제시골집백반’
소박한듯 풍성한 13가지 찬
단골은 일 도와가며 식사도
- ‘장비손만두’
피는 쫄깃하고 속은 꽉찬 맛
술떡·찐빵 등 他메뉴도 일품
- ‘남하부엌’
장흥의 풍부한 식자재 사용
정성껏 조리한 파스타·피자
‘원앤식스제빵소’ 빵들의 유혹
‘물고기들의 숲’ 커피의 향기
전남 장흥군 장흥읍내 주택가에 숙소를 정하고 별일 없이 일찍 잠들어 일찍 깼다. 단잠이었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맞는 아침이 오랜만이다. 커튼을 열어보니 어젯밤 보이지 않았던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 대문, 흰색 담, 고즈넉한 마당, 그리고 새소리. 고층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나에겐 이 정겨운 주택가의 모습은 여행지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남하부엌’ 치즈피자.
아침 일찍 토요시장에 나가보았다. 벌써 시장에는 사람들이 몰려 활기찬 모습이었다. 탐진강 물결은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발산했다. 시장 골목을 걷다 보니 어느 왜소한 할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딸기를 바구니째로 팔고 계셨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보니 할머니는 이미 딸기를 다 팔고, 다른 채소를 산더미 같이 쌓아놓았다. 할머니의 단골들은 그간 할머니와의 만남을 고대했었던 것 같다. 바쁜 할머니와 눈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이 연세까지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는 할머니의 열정과 에너지가 부러웠다.
한우 도소매유통업을 하고 있는 큰 도로변 대형 한우판매센터에 간혹 사람들도 보였지만 관광버스 한 대 없는 모습이 썰렁하다. 그래도 시장 반찬가게의 억척스러운 아주머니 둘은 언제고 방문할 손님을 대비해 팔 걷어붙이고 힘을 합해 파김치를 무치고 있었고 다른 반찬가게 아주머니 두 명 역시 쭈그리고 앉아 총각무를 열심히 씻어내고 있었다. 언제나 열심히 그들의 삶을 살아내는 장날 사람들의 모습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
장날의 백미는 역시 시장에서 먹는 아침 식사다. 토요시장에서 이름이 난 ‘형제시골집백반’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아침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자리 잡고 앉으니 이미 식당은 거의 만석이었다. 큰 사각쟁반에 한꺼번에 찬이 준비되어 나오고 다음으로 밥과 국이 나왔다. 이날 찬의 주인공인 고등어 묵은지 찜도 나왔다. 오래 숙성된 김치는 그 어떤 재료와도 잘 어울리는 신통력이 있다. 뭉근한 불에 끓여낸 김치는 고등어, 무와 결합해 새로운 질감과 맛의 궁극을 느끼게 해주었다. 하얀 쌀밥과 소고기 미역국, 애호박 무침, 감자채 볶음, 어묵 조림, 미나리 무침, 건새우 볶음, 묵은김치, 김무침, 배추김치, 콩나물 무침, 버섯 볶음, 마늘대 무침 등 총 13가지 찬이 나오는, 소박하지만 진수성찬인 시골시장 밥상을 즐겼다. 밥이 부족한 사람들은 각자 직접 보온기에서 밥공기 하나씩 꺼내 자리로 가지고 간다.
식사하는 사람과 식당일 하는 사람이 알고 있는 양, 바쁜 아침 시간에 서로 돕는다. 식당의 아침 식사 회전은 매우 빨랐다. 나 말고는 모두 바빴다. 잠시 비우고 온 일터로 서둘러 돌아가는 모습이 활기차 보였다.
만족감 넘친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시장 구경에 나섰다. 시장 동쪽 골목에는 사온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내공 있는 식당들이 몰려있었다. 장흥은 된장 물회와 삼합이 시작된 곳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전국구 유명 물회 집을 비롯해 닭 떡국과 낙지 삼합 전골, 낙지회 무침, 키조개 소라 낙지 국밥, 육회 탕탕이, 굴 매생이탕, 굴 떡국, 매생이 떡국 등 소고기와 해산물이 풍부한 장흥의 토속 음식들을 제공하는 식당들이 눈에 뜨였다. 시장 내에 있는 수많은 소고기 유통 가게에서 부위별로 고기를 사와 이곳에서 식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고기를 먹고 난 후 장흥 토속 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썰어놓은 포장 고기들을 사와도 되지만 선호하는 고기 부위와 자르는 두께를 요청해서 취향대로 구워 즐기기에 좋다. 좋은 소금을 가지고 오는 것도 고기 맛을 즐기는 방법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물고기들의 숲’ 융 드립.
이미지 크게보기 ‘원앤식스제빵소’ 크루아상.
시장 안에 만두를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서쪽 방향으로 천천히 걸었다. 하얼빈(哈爾濱) 출신 중국 동포가 운영하는 손 만둣집 ‘장비손만두’가 그곳이다. 도착해보니 손만두뿐 아니라 막걸리를 넣어 만든 술떡, 팥소가 든 찐빵, 중국식 왕만두와 얇은 피만두 등 다양한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 팔고 있었다.
좋아하는 얇은 피만두를 주문해 시식했다. 딱히 앉아서 먹을 곳은 없다. 적당히 작업대에 자리 잡고 만두를 먹었다. 피는 쫄깃하고 속은 꽉 찼다. 넘치는 담백함도 가격을 능가했다. 맛있다고 하니 주인장이 술떡을 조금 잘라 권했다. 술떡의 시큼한 향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인장이 자꾸 시식을 권해 한 입 먹어보았다. 예상했던 시큼한 맛은 없고 산뜻한 향이 느껴졌다. 생막걸리와 우유를 섞어 반죽했다고 한다. 식혀서 먹으면 더 맛있는 술떡을 개발한 주인장의 연구 노력에 박수를 쳐주었다.
“한국에 시집와 한국식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만두만큼은 제가 잘한다고 확신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작고 피가 얇은 만두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것 한번 드셔 보세요.” 속이 풍부하게 들어있는 왕만두를 크게 잘라 맛보기로 주었다. “오~.” 맛있다. 풍부한 육즙이 느껴지는 촉촉한 고기만두였다. 전국으로 보내는 택배 물량이 많다고 해 냉동시켜 보내느냐고 물었다. “한 번 찐 후 식혀서 보냅니다. 다시 쪄 드시면 맛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오히려 술빵은 식어야 훨씬 더 맛있습니다.” 깔끔하고 흥 넘치며 야무지게 장사 잘하는 이 집 주인장의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다. 만두를 좋아하는 여행자들은 꼭 가봐야 할 곳이다.
여유 있게 커피 한잔 마시고 싶었다. 로스터리 카페를 찾아 탐진강 다리 건너 읍내 길을 걸었다. 길을 걷는 도중 흥미로운 이름의 베이커리가 눈에 들어왔다. ‘원앤식스제빵소’. 무작정 들어가 보았다. 프랑스 밀가루와 버터를 사용한다고 했다. 지난해 문을 연 이 작은 베이커리는 기본 크루아상뿐만 아니라 아몬드 크루아상, 팽오쇼콜라, 바게트 등 프랑스 전통 스타일의 소형 빵이 주된 상품이었다. 아침이 좀 과했나 싶었으나 이미 발동이 걸려버린 식탐은 어찌할 수 없었다. 한 개를 사서 포장한 후 계속 걸었다.
로스터리 카페 ‘물고기들의 숲’은 지역의 문화인과 예술인이 모이는 사랑방과 같은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화가인 이곳 주인장은 자신의 작품을 카페에 전시했다. 카페 입구 오른편 긴 벽에도 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왼편으로 자리를 옮겨 바라봐야 그림 전체가 보일 정도로 크다. “코끼리는 제 자화상입니다.” 그는 커피 전문가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장흥과 사랑에 빠져 장흥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이곳을 방문하는 손님끼리 친구가 되고, 주인장은 손님에게 카페를 맡기고 인근에 식사하러 다녀왔다. 서로 믿고 돕는 커뮤니티의 연대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미지 크게보기 ‘장비손만두’ 피만두.
그가 추천해 준 ‘에티오피아 아리차 내추럴’을 마셨다. 무산소 발효 커피로 안정적인 균형과 보디감, 은근히 삐딱했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산도가 공존하는 독특한 맛이었다. 다른 곳에서 가지고 온 빵을 먹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냐”며 그릇을 내줬다. 이곳 핸드드립 커피의 원두 종류는 13가지다. 로스팅기는 가장 안쪽 방에 예술품처럼 놓여있었고, 주인장의 또 다른 취미인 듯한 드럼도 있었다. 이곳에서 그림도 그린다고 했다.
오픈 주방에서 커피를 만드는 주인장의 융 드립 퍼포먼스는 소박해 보였지만 그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커피를 만들어 왔고, 마시는 사람을 충분히 배려하고 있으며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아티스트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마시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여행할 때마다 항상 핸드드립 커피 도구를 들고 다니는 여행자들에게 이 집을 추천한다. 크루아상 맛은 예상했던 그대로다. 겉은 바삭하며 속은 촉촉한 프랑스 밀가루와 버터가 만들어낸 정직하고 고소하며 올바른 크루아상이었다.
보성으로 넘어가기 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남하부엌’이 위치한 용산면으로 향했다. ‘남하’란 용산면의 옛 이름이자 인천에서 남쪽으로 귀촌한 홍성순, 성일경 부부의 사연이 융합된 이름이다. 남편 성일경은 목수다. 그의 작업장도 이곳에 있고 식당의 인테리어도 그의 손길로 완성되었다. 이곳 음식은 파스타를 기본으로 한 이탈리아 가정요리다. 홍성순 대표는 “이탈리아 음식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장흥으로 오니 좋은 식자재가 풍부해 소고기, 해산물 등 다양한 장흥의 맛을 파스타로 만들어봤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강태안 미식여행가
한국형 하몽의 결실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한국 사람들은 짠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염도도 적절히 조절해야 했고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을 부패 없이 잘 넘겨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저온 훈연 방법입니다.” 하몽의 표면이 검게 그을린 이유는 훈연했기 때문이었다. “외국의 좋은 음식 문화도 우리나라 현지의 식재료 사정에 맞게 연구 개발하면 더 좋은 문화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의 음식 문화가 장흥에 와 독특하게 지역화된 것은 그의 이런 도전정신과 실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 미식가이드
토요시장에서 아침 백반을 즐길 수 있는 ‘형제시골집백반’(061-863-2627)은 장흥군 장흥읍 예양리 167-19에 위치해 있다. 백반 6000원. 백반 메뉴는 오후 2시 30분까지만 판매한다. 하얼빈(哈爾濱)에서 시집온 동포가 운영하는 ‘장비손만두’(061-862-0079)는 장흥읍 토요시장3길 14, 1층에 위치해 있다. 고기왕만두, 김치왕만두, 통큰왕찐빵 모두 개당 1000원, 옥수수기정떡 2000원, 모시떡 2500원, 속이 꽉 찬 얇은 피만두 6개 1인분 3000원. 프렌치 베이커리 ‘원앤식스제빵소’는 중앙로 40-2에 있다. 크루아상 3300원, 아몬드크루아상 3800원, 호두시나몬브레드 4300원, 우유식빵 4800원. 로스터리 카페 ‘물고기들의 숲’은 장흥읍 동교1길 45에 있으며 뜨거운 커피는 4000원, 차가운 커피는 5000원. 라테 종류는 없고 융드립 커피만 내린다. 테이크 아웃은 텀블러를 소지해야만 가능하다. 월요일은 쉰다. 흑돼지로 장흥식 하몽을 만드는 ‘남하부엌’(061-862-2666)은 용산면 덕암지천길 3에 위치해 있다. 하몽을 넣은 하몽 크림 파스타 1만8000원, 하몽피자(11인치) 1만6000원, 키조개 오일 파스타 1만7000원, 우리 밀로 만든 고르곤졸라 치즈피자(11인치) 1만4000원. 월·화요일은 휴무다. 남파랑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78번 길을 통해 수월하게 이곳에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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