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WTO 제소가 유일대안 아냐
국내·국제법 등 단호히 대응”

日, 對韓 수출규제 오늘 개시
수출 신청 ~ 허가 90일 걸려
대체 수입 감안 한달이 고비

정부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조치에 대해 ‘명백한 경제보복’으로 규정하고, 규제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상응한 조치를 반드시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일본은)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강제징용에 대한 사법 판단에 대해 경제에서 보복한 조치라고 명백히 판단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부총리는 “보복 조치는 국제법에 위반되기에 철회돼야 한다”며 “만약 (수출 규제가) 시행된다면 한국 경제뿐 아니라 일본에도 공히 피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이 규제 조치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한 상응한 조치를 반드시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WTO 제소 결과가 나오려면 장구한 세월이 걸리기 때문에 유일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며 “국제법·국내법상 조치 등으로도 단호히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3개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발동했다고 주요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 규제 조치에 따라 스마트폰, TV 등에 쓰이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PR·감광재),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한국에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사용목적과 방법을 담은 서류와 무기용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심사에 90일가량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안보 수출 통제를 내세워 첨단기술, 전자부품 등에 대한 2차 보복 조치 검토에 착수했다. 안보상 우방인 ‘화이트(백색) 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하고, 외환법 시행령(수출무역관리령) 개정을 위해 오는 24일까지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진행한다. 이어 8월 중 시행령을 개정해 발효할 계획이다. 일본은 외환법을 통해 미국·영국·독일 등을 화이트 국가로 지정해 수출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데, 한국이 대상에서 제외되면 군사적 전용 가능성이 있는 첨단기술과 전자부품 등을 일본 기업이 한국에 수출할 경우 일본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에 따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계는 필수소재인 에칭가스의 재고물량이 최대 2~3주에 불과한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1개월이 생산 정상화를 가늠하는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비상운영체제에 들어갔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국 정부의 강 대 강 전략은 외교 문제를 경제 사안으로 잘못 적용하는 것으로, 공멸하는 치킨게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민종·박준우 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