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카더라’가 활개 치는 것은 ‘무지’해서라기보다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직접 경험하고 본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며 사람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자료사진

- 팩트의 감각 / 바비 더피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살인율·범죄 해마다 높아진다?
남자는 7초마다 성행위 생각?
우리가 믿는 정보에 거짓 많아

이면의 세상 보여주는 온라인에
사실 바탕으로 생각하는법 뺏겨

보고 들은 것만이 전부는 아냐
극단적 사례에 휘둘리지 말고
비판적 사고·통계 능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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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우주에서 만리장성이 보일까?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 같기도 하다. 우주에서 보이는 유일한 구조물이 ‘만리장성’이라고. 실제로 몇몇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0% 정도는 ‘보인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만리장성은 우주에서 보이지 않는다. “가장 두꺼운 지점이라고 해봐야 기껏 9m”이고 “주변이 산과 비슷한 색깔의 돌”로 지어져서 배경과 쉽게 구분되지 않다. 크기를 과장해서 말하다 보니 퍼진 거짓말을 전 세계인들이 신봉하고 있는 셈이다. 여론조사 전문가 바비 더피의 ‘팩트의 감각’은 전 세계 40여 개 나라의 여론조사와 미디어 등 최근 연구를 바탕으로 현대인들이 빠져있는 거짓말을 분석한다. 주제도 다양하다. 건강과 섹스, 돈과 종교, 범죄와 선거는 물론 거짓말의 세계라고 불려도 좋을 정치와 온라인 세계도 다룬다. 읽다 보면 놀란다. 이것도 거짓말이야, 하고 말이다. 그렇다고 거짓말 백서는 아니다. 저자의 의도는 믿음이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법, 즉 공평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많은 사람이 키웠으면 하는 것이다.

일명 ‘카더라’ 방식의 지식이 난무하는 영역이 바로 섹스다. 저자 표현은 “잘못된 인식이 곳곳에 숨어 있는 지뢰밭”이다. “굳게 닫힌 문 뒤”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운동장이나 탈의실에서 몰래 하는 이야기, 이어져 내려오는 속설, 수상쩍은 설문조사와 포르노” 등에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다. 가령 “남자는 7초에 한 번 성행위를 생각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자. 7초에 한 번이면, 한 시간에 500번, 깨어 있는 동안 8000번 성행위를 생각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성행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뜻”일 텐데,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 “단 하나도 진실된 정보가 들어 있지 않은” 텍사스에 있는 학교의 성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한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생식기를 만지면 임신한다”거나 “10대 게이 남성의 절반은 HIV 양성 반응을 보였다” 같은 금욕을 촉구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온통 성행위로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상황은 우리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면서 “극복하지 못할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다.

전남편을 살해한 한 여성의 엽기적 행각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혀를 차며 말세 운운하고, 살인이 이렇게 늘어나서 어쩌냐며 탄식한다. 하지만 저자는 “실제 변화 추세는 사람들의 인식과 매우 다르다”고 명토 박는다. 30개국 중 25개 나라에서 살인율이 낮아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람들의 85%는 살인율이 높아졌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29% 낮아졌다. 대개의 나라에서 이런 수치를 보였다. 이유는 이렇다. 대개 범죄 통계는 “전년도와 비교해서 산출하기 때문”에 20년 전 수치는 사람들의 관심사 밖이다. 거기에 “과거는 늘 좋게 기억된다”는 장밋빛 회상이 한몫한다. 미디어와 정치인이 쏟아내는 말에 이런 확증 편향을 강화한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세계관과 일치하는 정보를 사실로 믿는 ‘오류 진실 효과’와 강력한 “자기 보호 본능”에 빠져 있어 잘못된 정보들을 걸러낼 수 없을 때가 많다.

어쩌면 지금까지 언급한 가짜 정보들은 온라인 세상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저자는 온라인 세상을 일러 “거품 가득한 세상”이라고 명명한다. 온라인의 정보들은 세계사의 모든 측면을 담지 못하는데, 우리는 이면만 보고 세상은 이렇다저렇다 착각한다. 더구나 “소셜미디어에서 선택한 친구와 알고리즘 프로그램”은 “자기 목소리와 듣고 싶은 내용만 듣게” 만든다. “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의 공유”는 온라인 세상에 애초부터 없다.

어떻게 해야만 우리는 믿음이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법을 얻을 수 있을까. 저자는 무려 10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 관문이 가장 어렵다. “대부분의 문제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전제하라.” 체감상 부의 불평등은 격심해지고 있으며, 엽기적 살인과 테러는 연일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온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장밋빛 회상”이 아니라, 비록 원하는 만큼 빨리 사회 문제가 개선되지 않을지라도 “대부분의 문제가 점차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일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와 비슷하다고 인정하라”는 덕목도 눈에 띈다. 우리는 대개 직접 경험하고 본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은 요지경이고 사람도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일 것이다. 이 외에도 “극단적 사례에 휘둘리지 마라” “비판적 사고력과 통계 능력 그리고 뉴스 문해력을 길러라” “더 깊이 참여하라” 등의 덕목도 제시한다. “잘못된 인식을 단번에 없애줄 마법 같은 방법”들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현실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단초들은 돼줄 수 있을 듯하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생각을 키우고 발전시키고자 한다면, 곁에 두고 참고할 만한 책이다.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