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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라스 & 레조난츠

하이든과 C P E 바흐가 살던 1700년대에 연주되던 ‘도(C)’ 음과 오늘날에 연주되는 ‘도’ 음은 같을 수 없다. 작곡가가 그 음을 쓰던 당대의 양식과 인간 정신이 재현되며 끊임없이 재맥락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전 악보와 현대의 연주자는 ‘바로’ 만날 수 없다. 아무런 의미를 담지 않은 그 자체로의 원전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오늘날의 음악가는 음악사 속 수많은 이의 사유와 시도로 덧입혀진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를 양손에 받아들 수밖에 없다.

지난 24일, LG아트센터를 찾은 첼리스트 장 기엔 케라스, 앙상블 레조난츠의 무대는 조금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아울렀다. 음악 사조의 다양한 장면을 담아낸 베른트 알로이스 치머만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1944)을 첫 순서로 정한 프로그램부터 그 의도를 명확히 드러냈다.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1번과 C P E 바흐의 첼로 협주곡 1번, 그리고 하이든 교향곡 48번 ‘마리아 테레지아’를 연주하는 동안 케라스와 앙상블 레조난츠는 음악적 구성미를 우아하게 표현하면서도 긴장감과 활력이 넘치는 연주를 선보였다.

쾌활한 주제를 주고받는 1악장 도입부부터 케라스는 밝은 분위기의 기품 있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간결한 현악 반주에 이어지는 카덴차는 마치 새하얀 구름 위를 풍덩풍덩 뛰어다니듯 자유로우면서도 생동감이 넘쳤다. 뚜렷한 질감으로 그려내는 서정적인 2악장과 큰 폭의 다이내믹으로 화려한 기교를 펼쳐내는 3악장까지, 케라스는 듣기 좋은 소리를 빚어내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스스로의 감정에 몰입하며 때로는 과하게 느껴질 정도의 표현과 추진력을 보였는데, 이를 넉넉히 담아내는 건 앙상블 레조난츠였다. 기품 있는 톤 컬러와 유연함. 이들의 음악적 정체성이 한국 관객에게 뚜렷이 각인됐다.

C P E 바흐의 작품에서도 이들의 조화가 돋보였다. 특히 1·3악장에서 등장하는 반복적 패시지들을 창조적으로 쌓아 올리며 전개해나가는 현악 파트의 연주는 짜릿함마저 자아냈다. 정열적인 선율들을 뜨겁게 연주하며 앙상블을 리드하던 케라스는 앙코르 곡으로 J S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4번과 프렐류드 1번을 들려주었다. 케라스의 첼로가 ‘선함’이 느껴지는 아주 귀한 음색을 지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곡인 하이든 ‘마리아 테레지아’에서 케라스는 단원들 틈으로 들어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선사했다. 하이든 작품에 담긴 익살과 재치의 재미는 적었지만, 아쉽지 않을 만큼 다정하고 행복감이 깃든 연주였다. 현시대에 이렇게 뻔하지 않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방법이 또 있을까.

음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