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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세먼지 일상화… 공기청정기 불만·민원 급증

구매 3주 됐는데도 배송 안돼
“주문많으니 기다려라” 답변뿐
제품 하자 AS도 ‘깜깜무소식’

차량용 9개 브랜드 시험 결과
4개제품이 표준청정능력 미달
일부 “99.99% 정화” 과장도

1분기 민원상담건수 ‘최고치’
“깨끗한 공기 마시려다 울화통”

한반도에 미세먼지 공세가 연일 계속되자 공기청정기를 찾는 소비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9일 국내 가전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공기청정기 시장 규모는 300만 대로 추산된다. 미세먼지 공포가 일상화되면서 2016년 100만 대 수준이었던 시장 규모가 3년 만에 3배로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공기청정기 판매가 늘어나면서, 이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A 씨는 올해 1월 중순 국내 한 공기청정기 판매업체에 115만 원 상당의 가정용 가습기 겸용 공기청정기를 주문하고, 3일 만에 제품을 받았다. 하지만 사용한 지 한 달 만에 고장이 발생해 교환을 요구하자 업체는 “구매 후 15일이 지나 환불 및 교환이 어려우니 무상으로 애프터서비스(AS)를 받아라”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어 A 씨는 업체의 말대로 AS 신청을 했고 “일주일 안으로 처리해주겠다”는 답변을 받고 기다렸으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업체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에 답답한 A 씨가 직접 문의전화를 한 결과 이번에는 “부품이 없으니 기다려라”는 답변이 되돌아왔다. 이후에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가고 결국 3월 9일에서야 부품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제품으로 교환받았다. A 씨는 “적잖은 돈을 들이고도 미세먼지가 심했던 지난 봄 20여 일이라는 기간 동안 공기청정기를 쓰지 못해 가슴만 답답했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B 씨는 3월 초 국내 모 공기청정기 판매업체에 100만 원 상당의 공기청정기를 주문했으나 제때 배송이 되지 않아 불편을 겪었다. B 씨는 당초 업체에서 주문 후 3주가량 지난 3월 27일쯤 배송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이에 B 씨는 직접 판매업체에 전화를 걸었으나 반대편에서 들려온 답변은 “주문량이 많아서 배송이 지연된다”는 내용이었다. B 씨는 이후에도 배송이 안 되고, 정확한 배송 날짜도 알려주지 않자 소비자상담실에 “기다린 시간이 너무 아깝다”며 “보상을 받을 방법이 없겠느냐”고 문의했다.

이처럼 미세먼지 대신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공기청정기를 구입한 뒤 품질과 AS 등 각종 문제로 고통을 겪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공기청정기 관련 상담 민원은 2061건으로 전년인 2017년의 1772건보다 16%(289건)가 늘어났다.

특히 올 들어 3월 말까지 1분기 동안에는 모두 745건의 공기청정기 상담문의가 접수돼 2017년 이후 분기별 상담 건수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기청정기 구입이 늘어나는 만큼 소비자들의 불만도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상담실 관계자는 “공기청정기 관련 상담은 소음 등 제품상 문제로 인한 환불, 배송 지연, 광고내용과 다른 제품 배송 등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제품 구매 후 교환이나 환불 등은 쉽지 않은 만큼,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면밀한 검토와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기청정기 판매업체의 과장광고로 인한 소비자 현혹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3월 외국산 공기청정기를 판매하는 국내 총판 두 곳이 제품의 성능을 과장해 소비자를 속였다며 업체당 과징금 4억600만 원과 1100만 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유해물질의 99.99%, 99.97% 제거’라는 공기청정기 성능은 소비자의 일반적인 생활환경과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는 극히 제한적인 실험조건에서 확인된 것인데도, 광고에서는 ‘공기 중의 바이러스 99.99% 제거’ ‘실내공기 단 12분 만에 99.97% 정화’ 등을 강조, 실생활에서 매우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다는 인상을 소비자에게 심어줬다”고 지적했다.

차량용 공기청정기도 문제점이 제기됐다. 소비자단체인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달 시중에서 팔리는 차량용 공기청정기 9개 브랜드의 성능과 내장필터에 대한 유해물질 안전성 시험을 한 결과, 절반가량이 공기청정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단위 시간당 오염 공기 정화량인 공기청정화능력(CADR)을 비교한 결과, 9개 가운데 4개 제품이 0.1㎥/분 미만으로 공기 청정 효과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처리 능력은 생산자 모임에서 제정한 단체표준의 소형공기청정기 청정 능력 범위인 0.1∼1.6㎥/분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와 함께 차량 내 발생하는 악취 및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의 제거능력도 9개 제품 중 7개가 유해가스 제거율 기준(60% 이상)에 못 미치는 4∼23%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중고시장에서도 공기청정기 구매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좀더 저렴한 가격에 공기청정기를 구입하려고 중고제품을 찾는 소비자가 늘자 이를 노린 사기 판매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중고거래 인터넷 카페인 ‘중고나라’에는 최근 “공기청정기 사기를 당했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3월에는 한 네티즌이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45만 원짜리 공기청정기를 판다는 글을 보고 현금을 바로 입금했는데, 다음날부터 연락이 되지 않고 상대방 휴대전화는 꺼져있다. 돈을 받을 방법이 없을까”라며 고민을 털어놨다. 이 글의 댓글에는 “나도 당했다. 계약금 10만 원만 걸고 운송장 조회 후 완납한다고 했는데, 계속 입금을 재촉하길래 이상하게 생각해 거래를 포기하고 계약금을 겨우 돌려받았다”고 유사사례를 남겼다.

또 다른 네티즌은 “택배로 탁상용 공기청정기를 구매했는데, 완전 두 동강이 나 있었다. 판매자에게 이를 항의하니 ‘포장을 잘해서 보냈으니, 책임을 질 수 없다’고 하더라”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몇 번 사용 안 하고 집에 모셔두고 있는 공기청정기 제품이 있다고 해서 돈을 입금했는데, 물건을 보내주지 않았다. 요즘 공기청정기가 핫 이슈라 사기 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중고거래로 사기를 당했지만, 실제 피해 회복 사례는 아주 드물어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 같은 사기범죄에 철퇴를 가한 사례도 있다. 울산지법은 지난해 10월 인터넷 중고물품 거래사이트에 ‘건조기와 공기청정기를 판매한다’는 글을 게시해 구매자에게서 149회에 걸쳐 1억6800만 원 상당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된 사기범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 중고거래는 비대면 거래인 점을 감안해 반드시 안전거래 사이트나 직거래를 이용해야 한다”며 “거래하기 전 거래자의 계좌와 휴대전화번호를 경찰청 사기 예방 사이트에서 신고이력을 조회하는 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곽시열 기자 sykwa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