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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향·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

서른한 번째 교향악축제가 막을 내렸다. 매년 전국의 관현악단을 불러 모아 국내 오케스트라의 지형을 확인시켜주고, 청중이 궁금해하는 솔리스트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국내 유일 관현악축제다. 필자는 대규모 인원이 무대에 오르는, 그야말로 관현악의 진수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을 관람했다. 지난 18일 지휘자 최수열(사진 앞줄 오른쪽)과 부산시립교향악단이 연주하고,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앞줄 왼쪽)가 협연자로 섰다.

첫 곡은 윤이상의 ‘예악’. 궁중음악의 시작을 알리는 박이 ‘탁’ 하고 소리를 내며 낯선 음향을 주도했다. 마디의 구분을 지우고 주요 음향을 구성하는 ‘음다발’들이 수직적으로 겹쳐지기 시작했다. 음의 높낮이에 기조를 두는 현악기군은 그 고유한 특성을 가린 채 음향의 유동성을 드러내고, 관악기군은 음향 덩어리에서 선율선을 끄집어 올려 지속적으로 곡선을 만들었다. 지휘자 최수열은 박자를 짚어가며 불협화음들에 다이내믹을 불어넣었다. 때때로 소리가 납작하게 펼쳐지거나 그 울림이 역동적 변형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거칠게 삐져나오기도 했지만, 부산시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로운 ‘예악’을 성실히 들려주었다. 연주를 마치고 객석을 향해 악보를 들어 보인 지휘자의 행동은 작품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보였다.

피아졸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 중 겨울과 봄, 여름을 연주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악보를 보여주는 태블릿PC와 페달이 말을 듣지 않아 애를 먹었다. 등장부터 불안감을 보이더니 연주 중에도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지나쳤다. 특히 현악기 연주자들과 세심한 호흡을 이뤄야 하는 ‘봄’의 도입부 등에서는 완전히 삐걱거렸다. 그러나 특유의 호탕함과 자신감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무사히 연주를 마쳤다.

조진주는 확실히 자신만의 음악적 목소리를 지닌 연주자다. 그의 엄청난 에너지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가 음악을 해석하는 모든 과정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무대 위에서는 막힘없이 시원시원하게 음악에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소리는 세련되고 유려하며 감각적이다. 피아졸라가 써둔 세 개의 계절 또한 조진주는 관능적으로 묘사해냈다. 앙코르곡은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D단조 중 사라반드. 절제미로 통용되는 바흐의 선율에도 그의 직관이 실렸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이었다. 교향시 형식으로 50분간 이어지는 알프스산맥의 장대한 풍경을 최수열은 암보로 100여 명의 단원을 이끌며 무대 위에 펼쳐 보였다. 바순과 고요한 현악기의 선율이 조성하는 밤의 풍경을 지나 울창한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한 현악기군의 풍부한 사운드가 이어졌다. 악장인 임홍균도 제 역할을 훌륭히 해냈지만, 독보적인 음색을 들려준 첼로 수석 이일세를 꼽아 언급하고 싶다. 호른이 빚어내는 목가적인 사운드는 관객을 산맥의 꼭대기로 이끌었고, 트롬본이 정상의 위엄을 펼쳐 보이자 이내 오보에의 선율이 기쁨의 감정을 표현했다. 각 악기군에서 터져 나오는 솔로 선율은 명확하고 타악기의 음향도 압도적이었지만, 이날의 연주에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최수열이 그려낸 ‘알프스 교향곡’은 마치 퀄리티가 높은 다큐멘터리 영화 같았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멋진 영상을 보여주지만 창작자의 창의력이나 상상력을 맛보는 재미는 다소 부족했다. 슈트라우스의 그림을 착실히 재현하는 일도 쉬운 건 아니지만, 그 너머의 참신함을 관객들은 기대할 것이다. 그럼에도 최수열과 부산시향이 앞으로 보여줄 그림에는 분명 기대가 실린다. 앙코르로 들려준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폭발 폴카’는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중국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의 폐막 공연을 끝으로 교향악축제가 마무리됐다. 한 걸음 성장한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가 또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할 것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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