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폭탄 터진 듯 5일 오전 강원 강릉시 옥계면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인근 동해시 평릉동 한 야산으로 옮아 붙으며 마치 폭탄이 폭발하듯 타오르고 있다. 한 건물에서 창문을 통해 찍은 사진. 뉴시스

- 아수라장 현지 주민들

공포속 대피소서 밤 지새워
“통신끊겨 연락 안돼” 발동동

도시 전체가 희뿌연 연기와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강원 강릉시·속초시·고성군 주민들은 5일 대피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대피소 주민들은 통신 두절로 인해 가족들과 연락하지 못하는 등 불편을 겪었고 당국의 대처에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관동대에 재학 중인 김민지(여·23) 씨는 전날 아르바이트 퇴근길에 대피소로 지정된 속초시생활체육관으로 향했다. 김 씨는 “자취방이 있는 데로 불길이 왔다길래 곧장 여기로 왔다”며 “통신이 끊겨 서울에 계신 부모님과 연락이 안 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속초 장사동에서 어릴 적부터 살고 있는 김재수(70) 씨는 “평생 이런 큰불은 처음 본다”며 “공무원이 집으로 와서 이웃들까지 차에 태워 대피소로 데려다주었다”고 안도했다.

속초의료원은 의료진과 환자 전원을 다른 병원으로 대피시켰다. 병원 안까지 연기가 들어차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속초의료원에서 옮긴 환자들로 북새통을 이룬 보광병원에선 부상자들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아들과 함께 병원을 찾은 윤은자(여·50) 씨는 “몸만 겨우 빠져나오다가 강풍에 넘어져 오른쪽 어깨를 다쳤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화재로 인한 사망자 김모(59) 씨의 빈소도 보광병원에 차려졌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대피소로 이동하는 데 애를 먹었다. 강릉시 대피소에서 만난 신재각(89) 씨는 양손과 두 발이 검게 그을린 채로 있었다. 신 씨는 “대구에 사는 딸의 전화를 받고 집을 나왔다”며 “귀중품을 챙기러 다시 집에 들어가려다 화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강송주(여·75) 씨는 “급히 나오느라 휴대전화도 전화번호부도 모두 집에 두고 나왔는데 집이 다 타버렸다”며 “아들과 연락을 못하고 있다”고 발을 동동 굴렀다.

봄철이면 강원 동해안 지역에 대형산불이 이어지고 있지만, 당국의 안일한 대처로 피해를 키웠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고성군 토성면에 사는 A 씨는 상황실이 차려진 토성면사무소를 찾아와 “혼자 화마와 싸우면서 소방서에 빨리 출동해 달라고 했지만 갈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또 다른 주민은 “동해안 대형산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강원도 동해안 산불방지센터가 공식 출범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속초·강릉·고성=서종민·전세원·이성현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