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상처난 ‘입법의 전당’… 4일 오전 나무 지지대가 받치고 있어 불안정해 보이는 국회 정문 담장에 ‘위험·안전제일·DANGER’라고 적힌 띠가 걸려 있다. 전날 민주노총 집회에 참가한 노조원들은 국회 진입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 철제 담장을 무너뜨렸다. 김호웅 기자 diverkim@

폭력시위 조합원 전원 석방

강제로 뜯겨진 국회 담벼락
나무막대 세워 간신히 복구

“시위 도넘었는데… 속탄다”
일선 경찰들 불만 쏟아져

네티즌 “민노총은 치외법권”
전문가 “사법불신 초래할것”

그야말로 충격의 현장이었다. 민주노총의 폭력시위로 무너진 국회 담장은 4일 나무 막대를 덧대 임시로 복구해놓은 상태였다. 국회 관계자는 “뜯긴 담장을 그대로 두자니 보기에 좋지 않아서 이렇게라도 세워놓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 500여 명은 탄력근로제 확대 등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 심사에 항의하며 국회 진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1.4m 높이의 담장 18m가량이 무너져내렸다. 경찰 6명은 조합원이 행사한 폭력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비판의 화살은 ‘눈치 보는 공권력’에 더 집중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연행한 김 위원장과 조합원 24명을 “대체로 혐의를 인정했다”는 이유로 3일 밤에서 4일 새벽 사이 전원 석방했다. 경찰은 엄정수사를 천명했지만, 법과 질서를 수호해야 할 공권력이 기세등등한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일각에선 이날 열리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이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문재인 정부의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선 경찰들은 바닥으로 떨어진 공권력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학계에선 “법은 힘이 있든 없든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며 민주노총에 휘둘리는 정부와 경찰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이미지 크게보기쓰러진 ‘공권력’… 3일 오후 국회에서 정문 담장과 경찰 차단벽을 무너뜨리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격렬한 시위를 저지하다가 부상을 입은 경찰관이 들것에 실려 나가고 있다. 뉴시스

◇불만 쌓이는 일선 경찰 =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전날 진압봉을 빼앗고 주먹을 휘두르는 등 경찰을 향해 불법 폭력을 행사했다. 경찰에 따르면 시위 진압 과정에서 다친 6명은 치료를 받고 모두 귀가했지만, 부상자 중 일부는 뇌진탕 증세를 호소하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 경찰들은 “속이 탄다”고 하소연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분위기이지만, 민주노총의 불법 집회는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주를 이뤘다. 서울 강북지역에서 경비를 담당하는 A 경정은 “경찰은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라며 “현 정부의 지침에 따라 집회시위에 대응하고 있는데 이번 같은 폭력 집회에 대해선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B 경정은 “요즘은 미신고 집회도 최대한 보장하는 추세”라며 “충분히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반영할 수 있음에도 이렇게까지 주먹을 휘둘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전날 민주노총의 국회 진입 시도가 이뤄지던 시각에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주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해 경찰 총수로는 처음으로 “책임감을 느낀다”며 공식 사과했다. 이어 4일엔 신임 경찰 10명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과 백범김구기념관 등 9곳을 돌아보는 ‘경찰 역사 순례길’ 답사 행사에 참여했다. 민 청장은 지난해 7월 취임하면서 ‘민생 경찰’을 강조하며 대화 경찰관제 도입 등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정책을 펼쳐왔으며 용산참사 과잉진압 등에 대해 사과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집행엔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법은 누구에게나 엄정해야” = 시민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기사 댓글을 통해 “민주노총이 ‘치외법권(治外法權)’ 단체냐”며 정부의 안일한 대응에 분노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민주노총이 정권을 만들어줬기 때문에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것인가”라며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 불법엔 강력하게 대응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민주노총의 불법 행위가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고 시민들에겐 박탈감마저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고문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공권력의 안일한 대응으로 법치국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가 됐다”며 “정부가 친밀한 집단이나 단체라고 해서 봐주는 등 자의적인 공권력을 집행하다 보면 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헌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사무총장 또한 “법 위에 민주노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 위에 법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야 한다”며 “불법 시위를 해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게 되면 법을 우습게 아는 사회 분위기가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손우성·윤명진 기자 applepi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