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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예술작품을 통해 무언가를 드러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컨대 영화 안에서 잔혹하고 끔찍한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그 장면을 사실적으로 전시하는 것보다 은유적으로 드러내 관객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어떤 관념이나 감각을 일으키도록 하는 편이 훨씬 매력적이다.

지난 2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가진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사진)은 창작자와 관객이 만나는 가장 예술적인 방법을 두 시간 동안 몸소 펼쳐 보였다. 불필요한 동작 하나 없이 절제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음악 속에 담긴 수많은 물음표를 풍부한 음악성으로 표현해냈다. 매끈한 흐름 속에 튀어 오르는 직관적인 표현들, 세련된 음색에 투영된 세세한 감정의 층위들. 지메르만은 무엇 하나 과시적으로 드러내는 법 없이 완벽하게 균형 잡힌 연주를 들려줬다.

22·23일 양일간 열린 공연 중 필자가 관람한 둘째 날의 프로그램은 쇼팽 ‘4개의 마주르카’ Op. 24와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2번, 그리고 쇼팽 스케르초 1∼4번이었다. 마주르카는 마치 나이 든 쇼팽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듯 아련하게 펼쳐졌다. 3박자 단위 춤곡에 맞춰 둥글게 춤을 추다 멈칫하는 프레이즈를 지메르만은 아름답게 묘사했다. 그의 영롱한 음색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곡이었다.

퇴장도 없이 브람스 소나타 2번을 시작하며 지메르만은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켰다. 청년기의 브람스가 쓴 대담하고 다채로운 시도들을 창의적으로 펼쳐 보였다. 지메르만이 음악을 전개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논리를 띠고 착실하게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편도, 완전한 즉흥성을 추구하는 쪽도 아니다. 그저 그가 대비시키는 감각들을 관조하다 보면 그 서사가 체득되는 식이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화성적인 주제 선율과 대비되는 거친 질감까지 완성도 있게 그려내며 긴 여운을 선사했다.

2부의 쇼팽 스케르초는 시작부터 충격적이었다. 의자 위치를 제대로 정돈하기도 전에 쾅 내리친 첫 번째 불협화음은 분노가 깃든 다그침에 가까웠다. 흥미로운 음향의 프레스토를 지나 폴란드 크리스마스 캐럴의 선율이 담긴 느린 중반부는 슬픈 꿈처럼 묘사됐고, 3번의 하강하는 펼침화음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듯한 황홀감을 선사했다. 4번은 자유분방하고 긍정적인 한편 호기롭기보다는 단단하게 내면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를 내뿜던 지메르만은 수수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브람스 ‘4개의 발라드’ Op. 10-1·2·4를 앙코르로 들려주었다. 16년 전 내한 독주회에서 완벽주의를 고집하던 까칠한 거장은 한층 여유로운 웃음으로 관객들에게 손 키스를 보내며 고마움을 전했다. 바뀐 프로그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객석에 혼란이 있던 건 이날 공연의 유일한 흠이다. 이번 내한 독주회는 26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마무리된다.

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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