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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를 맞은 우리 선조에게 그나마 위안이 됐던 것은 산야에 지천인 봄나물이었다. 봄나물의 대표 격인 냉이는 겨우내 움츠려 있던 우리 몸을 깨어나게 하는 활력 채소다. 봄과 여름에 흰 꽃이 피는데 밭·길가에 저절로 자란다. 대개 어린 잎이나 순을 먹지만 버릴 것이 없다. 연한 뿌리는 이른 봄에 캐어 겉절이·국·전을 해 먹는다. 4~5월에 30~40㎝로 자란 줄기 끝에 달린 흰 꽃은 따서 화전의 장식으로 쓴다. 줄기는 말려서 연두색 가루를 내 두었다가 국수 반죽·양념 즙을 만들 때 넣는다. 과거 가난한 선비는 씨를 씹어 허기를 달랬다.

배춧과(양배춧과) 식물에 속하는 냉이의 원산지는 동부 유럽과 아시아다. 우리 국토 전역에 분포하며 봄에 논밭 둑·들판·습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한 잎씩 돋고, 열엿새부터 그믐까지 한 잎씩 진다 해서 달력풀이라고도 불린다. 영문명은 ‘Shepherd’s purse’(목동의 지갑)다. 열매 모양이 목동이 갖고 다니는 주머니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그렇게 불린다. 한자명은 제채(薺菜)다.

대개 맛은 향긋하다·달다·쌉싸래하다 등으로 표현된다. 단맛·쓴맛이 모두 느껴져 ‘먼 데 단 냉이보다 가까운 데 쓴 냉이’란 속담(먼 데 있는 친척보다 가까이 있는 남이 더 낫다는 뜻)도 나왔다. 맛이 고소한 참냉이와 매운 논황새냉이(황새냉이)로 구분된다. 참냉이는 잎이 작고 뿌리가 굵은 반면, 황새냉이는 잎이 크고 뿌리가 황새 다리처럼 가늘다.

양배추·브로콜리·케일 등 다른 양배춧과 식물과 마찬가지로 냉이도 약성이 뛰어나다. ‘농부월령가’(2월령)에 “달래김치·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해 약재를 캐 오리라”는 대목이 나온다. 냉이·달래 등 봄나물은 농가에선 귀한 약이었다. 한방에선 냉이를 눈과 간 건강, 춘곤증 해소에 이로운 채소로 친다. “냉이 죽을 먹으면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간을 도와 눈을 밝게 해준다”(본초강목), “냉잇국은 눈을 맑게 한다”(동의보감) 등의 말은 고의서에 근거한다.

민간에선 눈이나 간이 나쁜 사람에게 냉이 가루로 차를 끓여 마시라고 권했다. 지방간 환자는 냉이를 뿌리째 뽑아 말린 후 달여 마시면 유익하다는 말도 전해진다. 눈의 통증·피로에 시달리는 사람에겐 냉이 달인 물을 마시게 하거나 그 물로 눈을 씻도록 했다. 황사와 봄철의 건조한 날씨로 눈이 피로하고 마를 때(안구건조증 등)도 권할 만하다.

이른 봄의 냉이는 훌륭한 춘곤증 치료제다. 독특한 향이 봄에 달아난 입맛을 되살리고, 삶의 활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피로 해소제’인 비타민 B1이 봄나물 중 가장 풍부하다. 비타민 B1은 밥·빵 등에 든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바꿀 때 필요한 비타민이다. 결핍되면 탄수화물이 잘 분해되지 않아 젖산 등 피로 유발물질이 축적되며, 이는 춘곤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냉이는 단백질·칼슘·칼륨·철분도 풍부하다. 100g당 단백질 함량이 4.7g으로 채소 중 최고 수준이다. 뼈·치아 건강에 요긴한 칼슘은 같은 무게의 우유보다 많다. 칼륨은 혈압 조절, 철분은 빈혈 예방을 돕는 미네랄이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엔 입맛이 까칠해지기 쉽다. 된장국·된장찌개와 잘 어울리는 냉이는 멀찌감치 달아난 식욕을 되찾아주는 마술 같은 힘이 있다. 냉잇국은 음력 2월의 절식이다. 향이 독특하면서도 잘근잘근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