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6일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별감찰반 정권실세 사찰 보고 묵살 및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김용남 전 의원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산하기관 동향 문건’ 시인

前정권 찍어내기 조사 의혹
어느 선까지 보고됐나 주목

“다른 부처에도 존재 가능성”
추가문건 확인땐 정권 타격

朴정부 ‘문화부 리스트’엔
文 “민주주의 유린한 폭력”

27일 환경부가 산하 공공기관장, 상임감사 등에 대한 성향 및 동향 파악이 담긴 문건을 만들어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김태우 검찰 수사관에게 전달했다고 밝히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해당 문건은 전 정권 시절 임명된 인사들을 파악해 사표를 종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다고 볼 소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른 부처에서도 비슷한 문건이 작성됐을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광범위하게 성향 파악이 이뤄졌다면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청와대는 김 수사관이 개인적으로 알아본 것으로 동향 파악을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공공기관 간부 동향 파악 이뤄졌나 = 환경부가 작성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은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퇴 작업 진행 상황 보고서로 인식되기에 충분하다. 문서 상단에 ‘한국환경공단 외에는 특별한 동요나 반발 없이 사퇴 등 진행 중’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고, 야권 성향 인사들의 동향 정보까지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부처별로 사퇴할 인사들을 선별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소문 등에 따른 동향 정보가 나와 있어 특정 인사의 약점을 파악해 이른바 ‘찍어내기’용으로 사용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해당 문건에 등장한 한 인사는 이날 통화에서 “올해 1월이 임기였는데 지난해 11월에 비연임 통보를 받았다”며 “내가 안 나갈까 봐 환경부 감사관실에서 동향보고 한다는 등 겁을 줬고, 그래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역시 문건에 등장하는 다른 인사는 “사퇴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는데 청와대에서 사표가 아니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와서 지난 3월에 사표를 썼다”며 “환경부 감사담당관실에서 올해 감사가 나왔을 때 ‘사표 쓰는 문제에 대해 협조를 안 하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에 대해 자신들과 관련 없는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환경부 문건을 본 적도 없고, 문건에 나오는 정보 파악을 지시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감찰 대상자로서 공공기관장 이름 등을 확인했을 뿐이고, 다른 건 지시한 적이 전혀 없다”며 “김 수사관이 별도로 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처도 블랙리스트 있나 = 환경부 외에 다른 정부부처에서 이와 같은 블랙리스트 의심 문건을 작성했는지도 핵심 초점이다. 김 수사관 변호인인 석동현 변호사는 이날 통화에서 “김 수사관으로부터 다른 부처에서 그런 유사한 자료를 받거나 한 사실은 못 들었다”면서도 “이런 관련 문건이 환경부에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환경부 문건에 등장한 인사도 “사표 종용과 같은 일이 환경부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수사관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기관장들이 전 정부 당시 임명된 사람인지, 정치 성향이 어떤지 등을 함께 조사했다”고 밝혔다. 특감반원 모두가 담당 부처의 공공기관장 등에 대한 정치 성향 파악을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를 조직적으로 지시했다면 공공기관장 ‘블랙리스트’라고 불러도 될 만한 문서가 작성됐다는 의미가 된다. 청와대는 “공공기관장 등에 대한 세평 지시 등은 전혀 없었다”며 “관련 문건이 청와대에 보고된 적도 없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등이 ‘블랙리스트’라고 주장하는 문건이 청와대 윗선의 지시로 작성된 것으로 확인될 경우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은 심대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시절인 지난해 4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유린한 국가 폭력”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박근혜 정부 시절 불거진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 논란을 적폐로 규정, 대대적인 청산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은 정권에 적대적인 문화·체육계 인사들과 이들이 만든 콘텐츠를 문건으로 정리하고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중단·배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야당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에서 과거 이런 사건(블랙리스트 사건)이 불거졌을 때 자신들이 어떤 입장이었는지 돌아봤으면 한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김병채·이해완·장병철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