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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 한성대 교수·행정학 행개련 상집위원장

KTX가 무섭다. KTX 열차는 ‘달리는 시한폭탄’이라는 오명까지 듣고 있다. 지난 8일 강릉을 출발한 KTX 열차가 탈선하고, 최근 3주 동안 코레일 구간에서 발생한 사고만 10건에 이른다.

지난 1년 동안만 살펴봐도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 정말 다양한 사고들이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10월 17일에는 국가기반시설인 고양 저유소가 거의 온종일 불기둥을 내뿜었다. 지난달 20일 KTX 승객의 발을 꽁꽁 묶어버린 오송역 단전사고 정도는 재난(災難) 축에도 못 들 정도다. 그 나흘 뒤인 24일 발생한 KT 서울 아현국사 지하통신구 화재는 앞으로의 재난 양상과 결과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범죄신고 전화인 112 신고도 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마비시켰다. 그리고 열흘도 되지 않아 경기 일산 백석역 인근에서 터진 지역난방공사 온수 배관 사고는 또 어떠했던가? 화재도 아닌데 화상으로 무고한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가 난 KT 아현국사 지하통신구는 길이가 500m 미만이기 때문에 소방법상 규제가 거의 없이 달랑 소화기 한 대뿐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소방 당국이 지하통신구의 변화에 맞게 소방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했었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으나, 만일 했다고 하더라도 단지 ‘규제 강화’라는 이유로 논의 시도조차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의 통신선을 다이얼 전화기 돌리던 시대의 선으로 봐서는 안 된다. 한 가닥의 통신선이지만 그 안에는 인체의 혈맥처럼 국가 전체의 산업과 정보, 그리고 안전과 생명이 연결돼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재난 환경은 엄청 변했고 또 변해가고 있는데도 그를 대하는 안목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국이 1일, 아니 반나절 생활권이 됐음에도 재난 대응은 자치단체 소관이라는 고리타분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다. 강릉 KTX 열차 탈선으로 강릉지역 주민만 피해를 본 게 아니다. KT 아현국사 화재로 아현동과 인근 주민들만 피해를 봤는가? 이제 재난은 국민의 주소지를 기초로 하지 않는다. 국토 면적이 넓지 않고, 도시화율이 높으며, 남북 분단 상황의 우리나라에서 그러한 논리는 이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그런데 이번 KT 아현국사 화재에 통신장애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놀랐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재난신고 전화인 119이다. 소방에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타사 통신망으로 자동 전환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일찌감치 구축해 놨다고 한다. 지금 그들이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재난 대응은 국가 일원화 시스템이 돼야 한다면서 소방공무원 국가직화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 개정을 의결하는 의사봉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철도 사고와 차량 고장에 대한 특단의 조치로 최근 차량 분야 총괄책임자 등 4명이 보직 해임됐고, 국토교통부 장관과 국무총리가 나서 코레일 본사를 찾아 강하게 질책했지만 허사였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최소한 국가기반시설 책임자는 이제라도 ‘낙하산 금지법’을 시행해 관련 분야 전문성이 풍부한 인사만이 임명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또, 최소한 안전 분야는 ‘징벌적 과징금 부과’ ‘불량건물 폐쇄 또는 영업정지 명령’ ‘위반업소 정보 공개’ ‘건물 시공관리 표본확인 제도’ 등을 시행해 미래 세대에 불안과 위험을 유산으로 남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안전 분야에 대한 투자에 인색했던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국민에게 ‘희생과 인내’만을 강요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은 답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