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장철을 맞아 시장에 대량 출하되고 있는 배추와 무. 김치 맛은 김장 담그는 이의 손맛에 달려 있다지만 좋은 배추와 무가 없다면 손맛도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신창섭 기자 bluesky@

속이 단단하고 무거운게 上品
겉잎 길면 웃자라서 맛 덜해
김장 일찍 할 땐 고랭지배추
간장에 찍어먹는 배추전 별미
묵은지는 등갈비 찜으로 좋아

잔뿌리 없고 매끄러운게 제맛
작고 짧아도 단단한 것이 고소
반찬으로 육수로 ‘팔방미인’
무청 말린 시래기는 건강식
봄 나박김치·여름엔 열무김치

김장 시즌이면 찰떡궁합을 보이는 배추와 무는 유전적으로도 조상이 같다. 색깔은 다르지만, 똑같이 열십(十)자 모양의 꽃을 피운다. 이런 꽃이 피는 것으로 유채, 갓, 양배추, 콜라비, 케일, 브로콜리 등이 있는데, 모두 십자화과(科)에 속하는 한 가족이다. 누가 더 가까운 관계인지 혼동될 때도 있다. 강화도에서 나오는 순무는 무와 비슷할 것 같지만, 사실은 배추와 더 가까운 친척이다. 순무 씨앗이 배추 씨앗과 비슷한 점을 보면 이해가 된다.

요즘은 배추를 특별히 고르지 않아도 대부분 속이 노랗고 잎이 장미꽃처럼 안으로 말려 꽉 들어차 있다. 이런 품종의 토대가 된 배추는 씨 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진 우장춘 박사가 만들었다. 이후 우리나라 배추와 무 품종 개량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 돼 김치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을 빛내고 있다.

무는 뿌리 크기와 모양이 다양하다. 열무, 총각무, 동치미무, 단무지무, 김장무 등으로 다르다. 무청을 생산하기 좋은 무, 색깔이 있는 무도 있다.

충북 괴산지역에서는 7월 25일 이전에 김장배추 씨 뿌리기를 마치고 8월 25일 이전에 모종을 밭에 심는다. 11월 중순부터 배추를 수확하기 시작해 11월 말까지 출하를 마친다. 배추를 키울 때는 초기에 벌레를 잘 잡아주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추는 잎을 장미꽃처럼 안으로 오므린다. 수확 10일 전쯤에는 배추를 묶어줘야 하는데, 그래야 추위에 얼지 않는다. 수확기가 가까워질 때 일교차가 커지면 속이 꽉 차고 단단한 명품 배추로 탄생한다.

김장철인 11월에는 전국 각지에서 나오는 김장배추로 김장을 한다. 김장을 조금 일찍 시작하려면 강원도 고랭지 배추를 쓰고, 김장철이 지난 12월 이후에는 겨울배추를 골라 쓴다. 사시사철 재료를 구하기도 쉬워져 김장이 참 편해졌다. 절임배추도 계절과 상관없이 연중 구할 수 있다.

김장을 위해 배추와 무를 구입할 때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농협유통 농산팀 윤경권 팀장을 통해 알아봤다. “배추는 속이 단단하고 무거운 것이 좋습니다. 겉잎이 너무 긴 것은 웃자란 것이라 맛이 덜합니다. 김장용 무는 잎이 싱싱하고 잔뿌리가 없으며 매끄러운 것을 고릅니다. 뿌리가 좀 작고 짧아도 단단한 것이 고소하고 단맛이 납니다.”

김장은 어떤 방법으로 하면 좋을까? 오래전부터 시작됐지만 김치를 담그는 과정은 상당히 과학적이다. 추운 날씨에 소금에 절이는 과정, 속재료를 양념과 버무려 배추에 넣는 과정, 꾹꾹 눌러 담고 차갑게 보관하는 과정에 모두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우선 절이는 과정에서 부패미생물이 줄어든다. 일반세균은 염분 농도가 높아지면 잘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절임은 부패세균을 억제하고 초기에 유산균이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속재료와 양념을 버무려 배추에 넣는 과정을 통해 유산균의 먹이가 공급된다. 오래 두고 먹을 김치는 양념을 적게 쓴다. 꾹꾹 눌러 담고 겉에 비닐을 붙여 덮는 것은 부패미생물이 좋아하는 산소를 없애는 일이다.

처음에는 산소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유산균은 다른 세균과 먹이 경쟁을 한다. 웨이셀라, 류코노스톡 같은 유산균이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들은 산을 만들어 낼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 같은 다른 부산물도 만들어 낸다. 김치에서 공기방울이 나오고 포장이 부풀어 오르는 것은 발효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유산균이 자라면서 산을 만들고 산소가 줄어든다. 이렇게 새로운 환경이 되면 락토바실루스라는 유산균이 자란다. 산이 더 많이 만들어지면 김치는 상하지 않고 맛을 유지한다.

미생물이 자라는 속도는 온도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온도가 낮아지면 미생물 활동이 둔해지므로 낮은 온도에 보관할 경우 천천히 숙성된다. 발효가 서서히 진행돼 쉽게 시지 않으므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김치 맛의 비밀은 가족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정성이다. 어머니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봄부터 계획을 세운다. 김장용 마늘과 천일염을 미리 준비해 두고 추석 무렵에는 좋은 고추를 사놓는다. 직접 다듬어 방앗간에 가져간다. 열 번도 넘게 시장을 다니며 좋은 재료를 장만하는 정성은 명품 김치를 탄생시킨다. 여기에 손맛이 더해진다. 그때그때 김치 상태에 맞게 재료를 가감하고 좋은 방법을 찾아 최적의 맛을 낸다. 오랜 경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김장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는 다양하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썼다. 배추와 무, 마늘, 생강, 고추, 파, 갓 이외에도 새우젓, 멸치액젓, 황석어젓, 꽁치액젓, 생새우, 청각, 초피, 명태, 갈치 등 지역마다 집집마다 다르다. 재료의 활용 폭이 넓어 지역마다 맛의 깊이가 달랐다. 추운 지역에서는 속재료를 많이 넣지 않고 따뜻한 지역에서는 젓갈을 비롯해 속재료를 많이 썼다. 바로 먹을 김치와 나중에 먹을 김치를 따로 담갔다.

배추는 추운 겨울 항아리에서 꺼내 싱싱한 배추김치로 먹는 것이 최고이지만,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 배추전도 별미다. 국에 넣으면 시원한 맛을 내서 된장국이나 냄비요리에 넣으면 좋다. 묵은지는 등갈비를 넣어 찜을 하거나 돼지고기를 넣어 김치찌개로 만들면 맛있다. 배춧잎은 쌈용으로도 먹는데 김장을 마치고 나누는 보쌈김치 맛은 일품이다.

마당에서 배추를 절이고 항아리를 묻었던 풍경은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 요즘은 절임배추와 김치냉장고가 있어 과거에 비해 쉽게 김장을 할 수 있다. 편리해지기는 했지만 항아리에서 꺼낸 옛날 김장김치 맛은 잊을 수 없다.

무는 시원한 맛을 즐겨야 한다. 봄철의 나박김치, 여름의 열무김치, 가을무로 담근 깍두기, 겨울의 동치미로 계절을 이어준다. 열무는 여름철에 냉면, 비빔밥, 국수에 들어가 진가를 발휘한다. 겨울에는 잘 삭은 청양고추와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동치미가 기다려진다. 군고구마나 팥죽을 먹을 때마다 생각난다.

무는 반찬으로도 좋지만 육수로 사용해도 좋다. 무시루떡, 소고기무국도 좋다. 고등어조림이나 갈치조림에도 무가 빠질 수 없다. 한편 무말랭이를 만들 때 실에 꿰어 빨랫줄에 걸어 햇볕에 말리면 품질이 좋아진다. 들깨를 넣어 무친 무나물과 무말랭이무침은 밥상에 좋은 반찬이 된다. 무청을 처마 밑 그늘에 말린 시래기를 구해 보관했다가 볶아 먹거나 조림에 넣으면 건강식으로 좋다.

신구대학교 식품영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