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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수위 넘어선 학교폭력

집단으로 때리며 사진 찍은 뒤
SNS올린다 협박해 신고 막아

10명중5명 초등4~6년때 피해
교실·체육관·학교건물뒤 最多

형사미성년자 14 → 13세 추진
‘현실적vs성장·성숙 별개’논란

기성세대 직관적 대처 부적절
학폭위 외부전문가 더 늘려야

고교 2학년 A(18) 양 등 여학생 7명은 지난달 1일 B(18) 양 등 3명을 서울 금천구 노래방 등으로 끌고 다니며 집단 폭행해 전치 2~3주의 피해를 준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폭행 이유는 사소했다. B 양이 가해자 중 한 명의 남자친구와 신체접촉을 했느냐를 놓고 실랑이를 하다가 거짓말을 한 것에 화가 나 폭행했다는 게 서울 양천경찰서의 설명이다. A 양 일행은 최근 10대 폭력 사건에서 예외 없이 등장하는 ‘수순’도 밟았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폭행 과정을 사진 찍은 후 ‘신고하면 SNS에 올리겠다’고 협박하고 신고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받았다.

학교폭력(학폭)이 위험수위에 달했다. 욕설부터 사이버상의 괴롭힘, 단순폭행, 무차별 집단폭행을 하거나 심지어 감금, 고문하는 사례까지 나온다. 피해자들은 복수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등교거부, 자살, 자해시도 등 패닉에 사로잡혀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피해 청소년들은 주위의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부랴부랴 추가 대책을 내놓았지만, 현장에서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의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학폭 실태 = 5일 교육부와 일선 학교에 따르면, 전국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교 3학년 재학생 426만 명 중 399만 명(93.5%)을 대상으로 지난해 2학기부터 올해 5월 초까지 학폭 관련 경험 및 인식을 조사한 결과, 5만 명(1.3%)이 학폭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0.9%였던 2017년 같은 기간과 견줘 0.4%포인트 증가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느끼는 학폭에 대한 민감도가 커졌다”고 말했다. 피해 유형은 언어폭력, 집단따돌림, 사이버상의 괴롭힘, 신체폭행, 금품갈취, 성추행·성폭행, 강제심부름 등의 순으로 파악됐다. 학폭 나이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지난해 스마트학생복이 1601명을 조사했더니 54.8%가 초등학교 4~6학년 때 학폭을 처음 당했다고 했다. 51%는 교실, 체육관, 학교건물 뒤 등에서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전국 고교 학업 중단자 중 학폭 등에 따른 부적응으로 학업을 중단한 숫자는 331명이었다. 학폭 가해로 퇴학 처분된 이는 780명가량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학폭이 처음에는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욕설, 따돌림에서 시작해 중상해 또는 장애 유발 피해와 위험으로 번진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SNS의 발달로 문자메시지나 채팅앱 서비스를 이용, 욕설을 전송해 괴롭히기도 한다. 피해자들은 학폭을 당해도 부모가 속상해하거나 남들이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란 불안감, 보복에 대한 두려움 등의 이유로 도움을 구하지 않는 경우도 잦았다.

◇청소년 범죄 13세 미만 처벌 논란 = 단순해 보이던 학폭은 점점 강력 흉악·폭력범죄인 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폭행, 상해 등으로 커지고 있다. 정부가 8월 말 ‘학교 안팎 청소년 폭력 예방 보완대책’을 서둘러 내놓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해 12월 ‘학교 안팎 청소년 폭력 예방대책’을 만들어 추진 중에도 불구, 올해 들어 3월에 ‘대구 여중생 집단 성폭행’, 6월에 ‘관악산 여고생 집단폭행’ 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으로 만 19세 미만 청소년 범죄 인원도 줄지 않고 있다. 강소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한국의 소년 재범 실태와 쟁점’을 통해 “2017년까지 과거 10년간 10~18세 청소년 인구가 약 17% 줄었지만 소년 범죄 사건은 매년 약 7만~11만 건을 유지하고 있다”며 “소년법 개정과 처분의 변화에도 불구, 재범은 감소하지 않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됐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중대한 청소년 폭력범죄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취지로, 형사미성년자와 촉법소년의 나이를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하향하는 대책을 내놓았을 정도다. 청소년의 신체적, 정신적 성장 속도가 빠르고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 나이가 낮아진 점을 고려한 것인데 논란은 피할 수 없었다. 한쪽에서는 ‘사회 변화에 맞춘 현실적 대안’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따른 쪽에서는 ‘신체 성장과 정신적 성숙은 별개이므로 교육이 중요하다’며 비판적이다.‘빨간 줄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호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청소년 보호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제기된 실정이다. 지난해 부산 사하구 여중생 폭행사건을 계기로 청소년 보호법을 없애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7만6269명이 동의했다.

◇제 역할 못하는 학폭위원회 = 관련 법률과 기구도 있고, 신고의무·비밀누설금지 의무 등의 제도적 장치가 있는데도 학폭 예방에는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학폭 심의 과정도 혼란스럽다. 현행법상 학교폭력과 관련해 이의가 있으면 피해 학생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가해 학생은 시·도 학생징계조정위원회에 각각 재심을 청구하게 돼 있다. 문제는 두 기관의 재심 결과가 각각 다르게 나온다는 점이다. 교육현장도 학폭 대처와 학폭위 업무 등으로 엄청난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측은 “매년 학년 초만 되면 학폭 업무를 서로 맡지 않으려 해 담당교사를 정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교육계는 학폭 예방을 위해 가해 학생은 엄하게 벌하고 사회적 처벌 강화 사례를 중심으로 예방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철저한 사안 조사와 피해 학생보호·지원 확대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권고한다. 예방, 발견, 대처라는 순환 구조가 조화롭게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대립적 사회구도 역시 아이들을 학폭으로 내모는 원인 중의 하나”라며 “아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기성세대가 순간의 판단과 직관에 의존해 학폭을 처리하는 것은 적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재철 교총 대변인은 “학폭에 대한 부담을 학교에 떠넘겨서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적절한 생활지도와 훈계, 화해 등 학교·교원·학생 간의 자율적인 해결능력을 강화하는 한편, 학폭위에 외부 전문가 비중을 높이는 등 전문성 강화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부모교육, 공감 및 의사소통, 감정 조절, 갈등 해결법의 숙지와 함께 디지털 정보물의 건전한 사용, 유해 매체물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과 예방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민종·김기윤 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