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고용참사의 고통이 커지는 가운데 22일 새벽 일용직 근로자들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남구로역 주변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기다리며 길가에 앉아 있다.

(3) 인력시장의 ‘한숨’

경기불황에 식당영업 접어
“폐업뒤 갈곳없어 찾아왔다”

취업 못한 20대들 대거 유입
단순노무 청년 25만명 ‘최대’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가세
구직자 수백명 거리 가득 차

건설경기 나빠 구직난 심화
“요즘 허탕치는 날 많아졌다”

8월 내내 이어진 폭염도, 밤새 내린 비도 경기 침체 속에 거리로 나온 구직자들의 발걸음을 막진 못했다. 경기 악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자영업을 포기하고 건설현장을 찾아 나선 실직자부터 불법 체류 중인 외국인까지 구직자들은 하루 10만 원 안팎의 일당을 위해 매일같이 인력시장을 찾고 있다. 이 역시 경쟁이 치열해 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22일 오전 4시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주변에 형성된 인력시장엔 공사 현장 일자리를 구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의 행렬이 길거리와 골목을 가득 메웠다. 원래 건설 근로자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거리의 삶’에 내몰렸다는 이도 적지 않았다. 역 근처를 서성이던 이모(53) 씨는 “그동안 봉제공장 등 여러 곳에서 일했지만 결국 일용직 일을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양천구 신정네거리역 인근 인력시장 쉼터를 찾은 김모(55) 씨는 “몇 년 전까지는 보따리상을 했고, 지난해까지만 해도 장사를 했다”며 “해봤자 남는 것도 얼마 없고 해서 그냥 접었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비가 내리던 전날 새벽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산을 받쳐 들거나 길가 천막, 가게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던 구직자들은 한눈에도 수백 명에 달했다. 김모(52) 씨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작은 가게를 운영했지만 폐업한 뒤 갈 곳이 없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영등포구의 한 인력사무소를 찾아 직원과 상담을 하던 김모(여·48) 씨는 “식당을 하다가 장사가 안돼 지난해 그만뒀다”며 “우선 식당 보조 일이라도 하면서 다시 돈을 모으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엔 경기 침체와 고용시장 악화의 여파로 20대 청년들까지 건설 현장에 유입되고 있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를 졸업·중퇴하고 사회활동을 시작한 청년(15∼29세) 중 건설 노동 등 단순노무 종사자는 올해 5월 기준으로 지난해보다 2만7000명 늘어난 25만3000명이었다. 전체 졸업·중퇴 취업자(15∼29세) 중 단순노무직 비중 역시 전체(330만1000명)의 7.7%에 달해 관련 통계가 처음 집계된 2004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국인까지 가세하면서 구직난은 더 심해지고 있다. 21일 구청에서 운영하는 남구로역 쉼터 천막에서 결명자차를 무료로 나눠주던 기간제 근로자 박모(49) 씨는 “과거에는 중국 동포와 한국인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엔 여행 비자로 건너온 한족 등이 불법 체류하면서 일을 나오고 있어 구직자가 더 늘어났다”고 전했다. 박 씨는 “사람 수가 많아지면 임금이 떨어지기 때문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고, 종종 말다툼도 벌어진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남구로역 삼거리에선 차로를 가운데 두고 한국인과 중국 동포·중국인이 따로 모여 있었고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이도 많았다.

일을 구하는 사람은 늘었지만, 건설 경기가 얼어붙어 허탕 치는 날이 잦다는 게 구직자들의 불만이다. 다른 박모(44) 씨는 “2개월 전부터 남구로역에 나오고 있는데 일감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가는 날이 많다”고 말했다. ‘데모도’(미숙련 조수)가 늘어나 일당이 5만 원에 그치기도 한다고 구직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인력시장 구직자들의 하루 벌이는 동이 터 오는 오전 5시 30분쯤이면 거의 결정된다. 오전 6시부터는 식당·청소·파출부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시간이 시작된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대림역 등 근처 지하철역을 통해 생계 현장으로 떠났다. 편의점 앞 테라스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최모(여·44) 씨는 “지난주부터 홍익대 앞 식당에서 일하게 됐다”며 “요즘같이 일자리 구하기 시기에 어디든 가서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조재연·이희권 기자 jae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