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강원 강릉시 경포해수욕장에 설치된 ‘몰카는 범죄입니다’라는 경찰 홍보물 앞을 여성들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 작년 서울지역 ‘불법촬영’ 357건 1심 판결 분석

스마트폰 촬영이 94% 달해
여름철에 35%… 봄이 32%
특정인범행, 협박 등 이어져

현장서 몰카 찍다 붙잡혀도
유포 확인 현행법상 어려워
신체 일부만 찍힌 촬영물은
음란물 해당안돼 처벌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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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촬영(몰래카메라)이 여성들의 일상생활은 물론 사생활 영역까지 위협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불법 촬영이 극성을 부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이 몰카 범죄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인된 피해자는 3%대에 그쳤다. 범행은 대중교통 시설에서 압도적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문화일보가 대법원 법원도서관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이용해 2017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로 서울 5개 지방법원(중앙, 동부, 남부, 북부, 서부)에서 선고된 668건의 판결 사건번호를 확인, 이중 판결서 사본 제공 신청 제도를 통해 입수한 판결문 중 1심 재판 선고 357건을 중심으로 불법촬영의 범죄 양상 등을 분석한 결과다. 현행법의 한계로 불법 촬영물 유포에 대한 수사나 처벌 역시 어렵다는 점도 확인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26일 “몰카범을 현장에서 붙잡으면 최대한 유포 여부를 확인하려고 하지만 촬영 대상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데, 피해자 신원을 파악할 수 없다 보니 유포에 대해 처벌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무차별 불법 촬영… 흉기가 된 ‘스마트폰’= 불법 촬영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벌어졌다. 대중교통 시설이나 화장실에서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몰카와 애인 등 알고 지내던 특정인을 노린 유형이다. 분석 대상 중 불특정인을 상대로 한 몰카 범죄는 275건, 특정인을 노린 불법촬영은 82건이었다. 몰카 범죄에는 대부분 스마트폰이 범행도구로 사용됐다. 94.9%(341건)를 차지했다. 초소형, USB형, 손목시계형, 화재감지기형 카메라 등 특수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 촬영은 16건으로 나타났다. 발생 횟수는 적지만 이런 카메라들이 불법 촬영에 사용될 경우 사생활과 은밀한 신체 부위가 노출된다는 점에서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실제로 2015년 11월부터 서울 중구의 한 원룸텔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던 한 남성은 여성 투숙객의 방 천장에 화재감지기 형태의 카메라를 몰래 설치해 여성이 나체로 있는 모습 등을 3개월 가까이 30차례에 걸쳐 촬영,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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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시설’ 몰카 가장 많아 = 장소가 명시된 몰카 범행 중 200건을 추출해 분석한 결과, △대중교통 시설(69.5%, 139건) △화장실(13.5%, 27건) △피해자의 집 또는 숙박 시설(7.5%, 15건) △상점이나 노상(5%, 10건) △사무실 또는 학교 등 (4.5%, 9건) 순으로 나타났다. 화장실에 특수 카메라 장치를 설치하는 사례는 없었지만, 용변을 보는 모습을 불법으로 촬영하는 사례는 빈번하게 등장했다. 식당 등 시설에서 피해자가 화장실에 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 들어가거나 미리 옆 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하는 방식이다. 발생 시기는 △여름(6∼8월, 35.5%) △봄(3∼5월, 32%) △가을(9∼11월, 23%) △겨울(12∼2월, 9.5%) 등의 순이었다. 불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 촬영 범행은 한 사람의 몰카범이 체포 전까지 장기간에 걸쳐 다수의 여성을 상대로 저지르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한 남성은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29차례에 걸쳐 공용화장실이나 버스정류장에서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했다.

◇‘몰카범’ 붙잡아도 유포 여부 확인 어려워 =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275건의 판결에서 확인된 범행 횟수는 4343회에 달했다. 이 중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는 143명에 그쳤다. 피해자 중 3.29%만 자신이 몰카 피해를 당한 사실을 확인한 셈이다. 다른 피해자는 ‘신원불상’으로 남는다. 피해자 신원 확인이 쉽지 않다는 점으로 인해 불법 촬영물의 온라인 유포 확인은 더욱 어렵다. 불특정인을 상대로 한 몰카범은 일반적으로 현장에서 체포된다. 이때 스마트폰 등에 과거 촬영물이 발견되면 범행 횟수에 포함되는데, 대부분 엉덩이나 치마 속 등이 찍혀 있어 신원 파악이 어렵다. 신원 확인이 안 되는 경우 불법 촬영물이 유포됐다는 사실을 파악해도, 현행법상 처벌 대상인 ‘상대 의사에 반하여 유포’했는지를 확인하기 힘들다. 게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피의자의 자택 컴퓨터나 클라우드(온라인 저장) 등 외부 저장장치, 인터넷 접속 기록 등을 수사기관이 모두 확인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신체 일부만 찍힌 촬영물은 법률상 음란물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특정인 상대 촬영은 유포·협박 등 추가 범행 많아 = 특정인을 상대로 한 불법 촬영은 모텔 등 숙박업소에서 여성의 나체나 성관계 장면을 찍은 남성들에 의해서 주로 벌어졌다. 특정인 상대 불법 촬영은 범행 장소가 주로 숙박업소나 집 등 개별적 실내 공간이다. 연인이나 친구 등 친밀한 관계를 이용해 벌이는 경우가 많아 은밀한 행동이나 얼굴 등이 그대로 노출된다. 연인이었던 가해자가 결별을 요구하는 여성에 대한 협박 수단으로 촬영물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교제 중이던 여자 친구와의 성관계 영상을 지속해서 음란 사이트에 실명과 함께 게재하거나, 만남을 거부하는 여성의 지인과 가족에게 몰래 촬영한 성관계 영상과 사진을 무차별적으로 보내는 식의 유포 행위는 분석 대상 판결에 빈번하게 등장했다. 특정인 상대 82건 판결 중 이런 유포 행위가 있었던 건 모두 39차례로 절반에 가까웠고, 협박은 12차례나 벌어졌다. 폭행과 강제추행 등 추가 범행 동반도 6건이었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