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8일(현지시간) 러시아 우랄산맥 중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열린 산업 박람회 ‘이노프롬(INNOPROM) 2018’ 개막식에서 김동연(왼쪽 두 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데니스 만투로프(〃세 번째) 러시아 산업통상부 장관이 박람회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TASS연합뉴스

생색용 ‘신성장 세액공제’
기업이 기준 맞추기 어려워

승차공유·의약·바이오 등
규제에 막혀 혁신산업 정체

“공격투자 하고싶어도 못해
대통령 말보다 여건 마련을”

“투자 금액의 5%(대기업 기준)를 세액에서 빼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의 ‘신성장 기술 사업화 시설 투자 세액 공제 제도’는 생색용에 불과한데, 이런 제도로 일자리를 만들고 투자를 견인하는 ‘혁신성장’을 이룰 수 있을까요.”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10일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전반적인 세제 지원은 수년째 줄고만 있고, 규제·노동개혁 없이 법인세·노동정책 등 각종 비용 부담은 늘기만 했다”면서 “이런 분위기에서 대통령이 주문했다고 해서 기업이 섣불리 투자를 늘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신성장 기술 사업화를 위한 시설 투자 비용에 대해 세금 공제를 해 주겠다는 발상은 좋으나 일반 기업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기준을 제시한 데다, 이조차 올 12월까지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한다는 것이어서 중장기 전략하에 투자를 결정하는 기업에는 전혀 투자 유인책으로 작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제도는 만들어져 있지만, 실제로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 5% 이상, 2년간 상시 근로자 수 유지 등의 자격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엄격한 세법상 기준을 적용하면 매출 대비 3.1%에 불과한 R&D 비중(대기업 평균)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또 상시 근로자 수를 유지하라는 요구는 신사업을 위한 시설 투자를 하면서 기존 사업 재편을 위한 구조조정은 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혁신성장을 위한 투자와 고용 창출 노력을 홀대하거나 가로막는 규제는 이뿐이 아니다. 승차 공유를 앞세워 2016년 창업한 카풀 서비스업체 풀러스는 택시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극복하지 못해 최근 직원 70％를 해고하고 대표가 사임했다. 서울시는 풀러스의 영업행위를 ‘자가용 불법 유상운송 알선’이라고 보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이해 당사자의 입장을 조율할 제대로 된 공청회조차 열리지 않았다.

기업들은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동남아판 우버로 불린 ‘그랩’에 268억 원을 투자했고, SK는 이 기업에 810억 원을 투자했다.

4차 산업혁명과 결합해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되는 의약·바이오산업도 규제 벽에 막혀 있다. 의사와 환자를 원격으로 연결해 진료하는 원격의료는 의사 반대와 의료 민영화 우려 등으로 인해 속도를 못 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의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가 지주회사 규제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의무 지분율을 상향하도록 권고한 방안도 현실화하면 기업 투자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투자에 사용해야 할 막대한 재원을 손자회사 지분 확보에 추가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기업을 옥죄는 규제로 기업은 공격적인 투자를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라면서 “대통령이 나서 투자·고용을 늘리라고 해도 정작 정부가 전방위 차원에서 투자할 수 있는 규제·제도 등 여건을 조성해 주지 않으면 지금처럼 기업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투자가 위축된 상황을 반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관범·손기은 기자 frog7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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