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 정치’로 의회 아닌 사람 보스 중심 정치 남겨” 비판도
뛰어난 현실 감각으로 수 차례 ‘역사적 타협’ 주도
지역주의 정치 등 어두운 그림자도 남겨

23일 타계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정치학자들에게 한국 정당의 모델을 만든 인물로 평가받는다. 군인 출신이지만 누구보다도 풍부한 정치적 상상력을 통해 한국 정치의 거목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하지만 김 전 총리의 지나치게 뛰어난 현실 감각은 그를 ‘영원한 2인자’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한국 정치의 한 축을 만들었지만, 동시에 극복해야 할 과제도 동시에 남겼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1960~70년대 민주공화당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JP는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긴 하지만 한국 최초의 현대적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공화당 창당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박정희 정권에서 2인자 소리를 들었던 JP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을 비교해 보면 JP는 한 정당의 지도자가 되려고 했기 때문에 정치 생명이 훨씬 길었다”며 “군인 출신이긴 하지만 JP는 누구보다도 장기적 전략과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졌던 정치가”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JP는 하지만 결국 1969년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반대하다 포기하고 본인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며 “그때 끝까지 싸우지 않았기 때문에 리더로서의 JP에 대한 평가는 끝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JP는 어떻게 보면 김영삼(YS) 전 대통령보다 더 현실 감각이 뛰어났던 사람”이라며 “하지만 지나치게 좋은 감이 결국 스스로의 한계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도 JP의 공(功)으로 한국 정당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을 꼽았다. 김 교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운영되는 정당 모델이 JP가 만든 것”이라며 “중앙당·사무처 중심, 대통령의 총재 겸직 등은 변화를 겪긴 했지만 한국 정치에서 그 전통과 유산이 50년 넘게 지속됐다”고 말했다. 그는 “JP는 이 모델을 만든 것에 큰 자부심를 갖고 있었다”며 “하지만 이러한 형태는 우리 정당 체제를 아주 허약하게 만들고 국회를 정당 중심이 아닌 정치 중심으로 만들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JP가 또 하나 만든 것은 1987년 이후 지역주의 모델”이라며 “이런 점에서 보면 JP는 한국 정치의 인프라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결국 가장 극복해야 할 두 가지도 함께 안겨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JP는 누구보다도 공과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독재정권 시절에도 시위하는 학생들과 대화도 하는 등 나름대로 타협의 정치를 실천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대조적 이미지로 2인자의 역할을 했다”며 “이후에는 충청권 맹주로 등장해 수평적 정권 교체에 큰 역할을 해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 망국병으로 불리는 지역주의를 조장한 정치인이라는 측면에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JP는 가장 낭만 있는 정치인으로도 통한다. 남다른 현실 감각을 통해 협상의 기술을 발휘하고 치고 빠져야 할 때를 정확하게 판단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허허실실로 보이는 JP의 리더십을 현역 정치인들이 좀 배워야 한다”며 “지금은 우리 정치권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고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잃은지 오래”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마지막에 내각제 신념을 지키려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김병채·박세희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