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추진방향 내놨지만
원칙 버리고 정치 고려만 남아
‘한국GM 사태’ 되풀이 가능성

한국 제조업의 생사를 판가름할 구조조정 문제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놓으면서 로드맵, 컨트롤타워, 방향이 사라진 ‘3무(無)’의 위기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일자리 프레임’에 사로잡힌 정부가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표심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을 앞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늘고 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28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제조업의 경우 구조조정이 대량 실직으로 이어지다 보니 정부는 가능한 한 손에 피를 안 묻히고 싶어 한다”면서 “정부가 인기 없는 정책을 피하면서 기업이 아니라 산업 자체가 좀비화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해운과 조선업에서 시작된 부실 등은 전자와 자동차 산업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면서 “제2의 한국지엠, 제3의 금호타이어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기업구조조정 추진방향’을 내놓으면서 부실 예방과 선제적 경쟁력 강화, 시장 중심의 구조조정, 금융·산업적 고려의 균형화 등 기본 방향을 밝혔다. 하지만 기득권 철폐, 손실분담 등 구조조정의 기본원칙은 사라지고 ‘지원’과 ‘보호’ 등 정치적 고려만 남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성동조선해양과 지난해 법정관리를 졸업한 STX조선해양에 대해 정부는 경영컨설팅 보고서를 토대로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회생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두 회사가 청산의 위기에서 회생으로 극적 반전을 이룬 계기는 지난 1월 3일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조선경기 회복’ 발언 이후부터라는 말이 산업계에 무성하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6월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고, 현 정부의 정책 기조도 뚜렷해 노동계에 부담을 주는 구조조정을 하기 어려운 여건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현재의 우리 경제가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방승배 ·권도경·유현진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