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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위원회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 또 하나 급조된 위원회로 ‘금융행정혁신위원회’가 있다. 민간 자문기구인 이 금융행정혁신위가 금융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금융공공기관이 혁신이라도 되는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노동이사제도는 사회주의 국가가 대다수인 유럽에서 널리 인정되는 제도다. 당연히 유럽 학자들 가운데 다수가 노동이사제가 과연 기업의 성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했다. 연구 결과물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결론은 노동이사제가 회사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근년에는 경제 상황이 어려운 유럽 국가들은 노동이사제를 과감하게 폐지하고 있다. 헝가리, 슬로베니아, 몰타, 폴란드,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체코 등이 그렇다.

근로이사제의 원조는 독일이다. 독일의 공동결정법에 따르면 근로자 500명 이상인 기업은 경영이사회가 아닌 감독이사회의 3분의 1을, 2000명 이상인 대기업은 2분의 1을 근로자의 대표로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 기업의 지배구조가 완벽한 것인가? 2000년대 들어 독일에서는 보다폰사건, 지멘스사건, 폭스바겐사건 등 대규모 회계부정과 추문 사건이 터졌다. 최근에는 독일 자동차 회사들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노동이사제가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이나 기업의 부정 예방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독일에서는 이 규정을 무시한다고 해서 무슨 벌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제도가 장점을 발휘하는 경우는 단 하나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할 경우다. 직원을 내보내는 작업을 할 때 노동이사들이 악역을 도맡아 한다. 강성 노조가 판을 치는 한국에서는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노동 문화의 성숙도에 달린 것이다.

독일은 이미 노사 발전의 마지막 단계인 노사 협력단계에 이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은 아직 제3단계인 노사 대등관계로, 노사 투쟁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도 독일의 유명기업인 알리안츠, BASF, DVD방크 등은 지배구조가 자유로운 유럽회사(SE)로 전환했다.

노동이사제도는 전통적인 제조업에는 적합할 수 있다. 그러나 혁신을 주도해야 할 금융산업, 정보기술(IT)산업, 벤처산업과 같이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산업 분야에서는 지배구조의 비효율성 때문에 채택하기 어려운 제도다. 금융업은 제조업이 아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 가운데서 노조의 대표만이 반드시 이사회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그들은 회사의 장기적인 발전보다는 자신을 이사회에 진출시킨 노조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굳이 이사회에 참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근로자도 임원이나 사장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임원이나 사장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임원의 연봉이 사원의 월급보다 수백 배 많은 것은 이유가 있다. 임원이 군대의 지휘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군 지휘관은 나라를 구한다. 위대한 CEO는 회사의 성장을 가속화하지만, 무능한 CEO는 회사를 파산하게 한다. 아무나 군 지휘관이 될 수 없듯이 회사의 CEO나 임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책이 아니다. 사외이사도 마찬가지다. 근로자도 능력을 인정받아 퇴직 후 이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노조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영을 책임지는 임원이 되는 건 비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