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梨大비리’ 9명 모두 1심서 有罪

재판부 “최순실, 법·절차 무시
특혜의식마저 보인다” 비판
崔, 61번째 생일에 첫 유죄판결

정유라 부정선발 순차공모 인정
국회 청문회 위증 혐의도 단죄

검찰이 지난해 10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 나선 지 8개월여 만에 사법부의 첫 단죄가 이뤄졌다. 사건의 시발점이 됐던 최순실(61) 씨의 딸 정유라(21) 씨의 이화여대 부정입학·학사 비리 관련 피고인 9명 전원에게 23일 유죄가 선고됐다. 재판부가 이날 최 씨의 행동과 관련, “빽도 능력이라는 냉소가 사회에 퍼졌고, ‘법과 절차를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과 ‘주변 사람이 자신과 자녀를 돌봐줘야 한다’는 특혜의식마저 보인다”고 비판한 점도 이례적이다. 이날 재판에서는 최 씨가 딸의 명문 사학 입학을 위해 불법과 편법을 저지르고 교수들이 이에 공모한 정황 대부분이 법원에 의해 인정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 김수정)는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 씨와 최경희(55) 전 이화여대 총장, 남궁곤(56) 전 입학처장, 김경숙(62) 전 신산업융합대학장 등 주요 피고인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불과 지난해까지 이화여대의 주요 보직을 맡고 있던 교수들은 최 씨의 딸 정 씨의 부정 입학과 학사 비리에 순차적으로 ‘공모’한 사실이 모두 인정돼 법정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검찰은 최 씨의 사문서위조 미수 혐의, 남궁 전 처장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 극히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무죄를 선고했을 뿐, 대부분 검찰이 기소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의 이날 판결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공정성’이라는 근간을 흔드는 범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최 전 총장, 남궁 전 처장 등에 대해 “피고인들이 부정한 청탁에 의연하게 맞서기는커녕 특혜를 주기 위해 애쓴 흔적은 국민 전체에 커다란 상처와 분노를 낳게 했다”며 “한 사립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한 입시를 믿었던 수험생, 예비 대학생, 학부모의 불신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재판부가 최 전 총장, 남궁 전 처장 등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위증한 혐의에 대해서도 대부분 유죄로 인정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는 주요 피고인들이 위증한 정황이 드러날 때마다 적극적으로 기소해 왔다.

이날 재판부가 최 씨의 딸 정 씨의 공모관계까지 인정하면서 두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됐던 정 씨에 대한 검찰 수사와 향후 재판에도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 씨가 덴마크에서 한국으로 송환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슨 전공을 했는지도 모른다고 밝힌 부분 등이 사실상 법원의 판단과 배치되는 만큼 검찰이 추가적인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최 씨는 이날 눈시울이 젖은 상태로 재판정에 입장해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판사의 질문에 답했다.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짓다가도 매서운 눈초리로 법정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기도 했다. 선고가 내려질 때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허공만 쳐다봤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은 최 씨의 61번째 생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생애 처음 구치소에서 맞은 생일에 유죄 판결을 받아든 셈이다.

민병기·김리안 기자 mingm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