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정의용(왼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국방위원장실에서 김영우 국방위원장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통일외교안보특보에 임명된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연합뉴스

개성공단·금강산 보류하되
인도적 지원부터 접촉 ‘물꼬’
연락채널 복구도 시도할 듯

정의용 “판문점 핫라인 재개”
통일부 “민간교류 유연 검토”

문정인 “5·24해제 필요” 발언
靑선 “협의 안된 사견” 선그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임명 하루 만에 남북관계 개선 추진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의 향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에 대한 기본 인식이나 대선 공약 등을 감안하면 새 정부는 북한과 인도적 지원 등 사회·문화적 교류 재개를 시작으로, 경제교류·협력 등을 확대해나가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북핵 문제 역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해법을 찾는 등 ‘햇볕정책’ 기본 노선을 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기존 외교·안보 라인은 물론 문 대통령 측근 사이에서도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 한 대북정책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정 실장이나 통일부의 발언과 관련, 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으로 발표된 남북 교류 중단 선언인 ‘5·24 조치’에는 당장 변화가 없을 것이라 선을 그었다.

23일 외교·통일 당국자들은 북한 미사일 발사 이튿날인 전날 북측에 유화책을 내민 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 9년간 이어진 남북 경색 분위기를 끊어낼 필요가 있고, 남북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행 통일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대북정책 기조와 관련해 “민간교류 등 남북관계 주요 사안에 대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연하게 검토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 제공자를 북한으로 분명히 하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던 보수 정부와는 달리 남북 교류를 보다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같은 날 정 실장이 국회를 방문해 “남북대화를 현 단계에서 바로 재개할 순 없지만 연락통신망, 판문점에서의 핫라인 이런 것은 빨리 재개해야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여론이 분분한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경제협력은 보류하되, 이와 별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에 위배되지 않는 인도적 지원이나 사회·문화 교류는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뜻이라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이에 따라 남북 간 민간 교류에 대해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청와대와의 교감을 통해 우선적으로 북한에 인도적 지원 등 낮은 단계의 접촉부터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선일 전후 대북 접촉을 신청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 대북 인도지원 단체들의 지원 사업이 먼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10여 개의 단체가 대북 접촉을 신청한 가운데 통일부는 접촉 허가 여부를 이달 안으로 결론 낸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이나 개성 만월대 발굴사업 같은 사회문화 교류 등도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박근혜정부도 초기엔 인도적 지원을 일부 허용했지만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이후부터 지원을 유보했다.

한 정부 당국자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비정상의 정상화를 남북관계에서도 이뤄나가겠다는 신호 아니겠냐”며 “북한과 단절됐던 판문점 연락 채널을 복구하는 데서부터 시작해 장기적으로는 대북제재를 지켜나가는 선에서 경협 재개 등을 모색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가동 문제에 대해선 섣불리 재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정부 안에서 나온다. 청와대는 23일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의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검토 발언에 대해 “청와대와 협의한 게 아니고, 개인적으로 필요하다는 걸로 해석해야지 않겠냐”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서는 당장 내일 5·24 조치가 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정부 한 관계자는 “제재의 핵심을 건드리는 완화 조치는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