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들의 평가

“분노표출에 머무는 건 한계
합리적 대안 마련 이어져야”

“정파와 이념을 초월해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를 지킨다는 자세로 촛불집회의 순수성을 살려 나가야 합니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22일 “이번 촛불집회는 그야말로 수십 년 전에 사라졌어야 할 ‘구태’에 대해 시민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한국 민주주의의 마지노선을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에 따라 비폭력 평화집회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최근 한국 촛불집회 규모의 집회·시위가 열렸다면 분명 약탈이나 방화가 일어났을 것이라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며 “촛불집회 그 자체로는 한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2008년 이명박정부 당시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그래도 정부와 여당의 설명을 믿고 지지하는 세력이 어느 정도 존재했지만, 지금은 대통령 지지율이 4%까지 떨어지는 등 거의 모든 시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 형국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0월 29일 처음 시작해 지난 17일로 8차례 진행된 촛불집회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으로 총 820만 명을 넘어섰다. 장 교수는 다만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요구하는 ‘촛불의 힘’이 아직 제도 정치권에는 잘 수용되지 않는 한계도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은 “이번 촛불집회에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며 “비폭력 평화집회 기조를 이어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실장은 “하지만 법치를 훼손해도 된다는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학생들을 순수하지 않은 목적으로 동원하는 등의 부작용은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의 장에 진입하면서 자존감과 자긍심을 세웠다는 점에서 촛불집회의 의미를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 국가·민족 차원에서 분노가 모인 점, 사회적 동원 수준이 세대와 계층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 정치권이 주도해 시민들이 뒤따라 가면서 생길 수 있는 ‘정치의 배반’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이번 집회의 주요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그러나 “국가체제 재편에 대한 대안 마련 및 대안세력 구성에는 어떠한 합의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점과 시민사회가 대화와 합리적 대안 마련보다는 분노 표출에 머무르고 있는 점 등은 한계로 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준영·김성훈 기자 cjy3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