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목소리 내려는 창구가 정부입장 통보 단체로 전락”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과 관련해 대기업들의 자성론이 일고 있다. 청와대와 비선 실세의 압박에 기부금을 내는 관행을 뿌리 뽑으려면 기업들도 윤리경영의 원칙에 더욱 충실하면서 부당하거나 부적절한 권력의 요구에는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기부를 연결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대해서도 재계 안팎에서 쇄신론이 비등하고 있다.

한 4대 그룹 관계자는 4일 전화 통화에서 “전경련의 설립 목적은 기업 간의 이익을 도모하고 정부 등에 재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창구였는데 이제는 정부 입장을 재계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단체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와 협력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입장을 분명하게 표명했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자성을 촉구했다. 또 다른 회원사 관계자도 “회원사들 사이에서도 전경련에 대한 불신감이 커지고 있다”며 “전경련이 뼈를 깎는다는 각오로 바뀌지 않는다면 전체 국민은 물론 회원사들에게도 외면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낸 53개 기업 중에 이사회를 거쳐 정식으로 결정한 경우는 4곳뿐”이라며 “권력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지만, 아무런 절차도 거치지 않고 납작 엎드려 무조건 응하는 기업들의 관성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계는 그러나 일각에서 제기되는 전경련 해체론에 대해선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선을 긋고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전경련 해체가 답이 아니라 회원사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책 연구 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업무 전환을 해야 한다”며 “재계 대표 단체로서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시장경제 관련 정책을 개발해 정부에 제안하는 싱크탱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해외 진출 때 정보를 공유하거나 각국 경제인들과의 모임을 주선하는 등 전경련의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현재 쇄신을 위한 대응팀이 꾸려져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는 중”이라며 “회원사들의 의견을 반영해 새로운 전경련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