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치자금’ 기업 수난史

고도성장기 1970년대 기원… DJ 이후 공식사업에 동원돼

권력의 ‘기업 손목 비틀기’ 역사는 뿌리가 깊다. 정권의 기업 돈 빼먹기가 구체적으로 국민 앞에 드러난 것은 1970년대다. 정경유착의 오랜 고리가 1970년대에 시작됐을 리는 없지만, 통치권자가 본격적으로 통치자금을 조성한 것은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진행된 박정희 전 대통령 때부터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2002년 대통령 선거 후 밝혀진 한나라당의 이른바 ‘차떼기 사건’ 이후 대선자금이 발붙일 곳이 없어지면서 각 정권은 다양한 형태로 내세운 사업에 기업을 ‘억지 춘향 격’으로 끌어들였다.

4일 재계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공화당 재정위원장을 지낸 고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 대통령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 씨 등을 내세워 정치자금을 조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외자 도입이나 정부 발주 공사 과정에서 리베이트를 챙기는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3년 버마(미얀마) ‘아웅산 묘지 폭발사고’ 유가족 지원 명목으로 일해재단을 만들어 이듬해 3월부터 1987년 12월 사이 대기업들로부터 무려 598억5000만 원을 거뒀다.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10월 27일 비자금 조성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통치자금은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 정치의 오랜 관행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대선자금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한나라당의 ‘차떼기 사건’이다. 당시 한나라당은 트럭째로 건네받는 수법으로 대기업에서 823억20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노무현 캠프도 112억2000만 원을 받았다.

김대중정부 때는 대선자금 또는 당선축하금을 받지 않고 공식적인 정부 사업에 기업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대북 사업이 대표적이다. 햇볕정책이 한창이던 2000년 LG상사는 비무장지대에 물류센터 건립을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북한에서 조립 생산된 전자제품을 국내로 들여와 판매하는 경쟁에 나서기도 했다. 이명박정부 때는 4대강 건설, 녹색성장을 내걸어 기업들을 대거 참여시키기도 했다.

장석범 기자 bu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