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계·전문가 하소연

준조세 관행 사라지지 않으면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 더 약화
정부 팔비틀기에 일방적 헌납
처벌 강화·가중처벌 등 필요

朴대통령 기업에 ‘공식 사과’
강제모금 근절 계기 여부 주목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기업 삥뜯기’(강제 모금) 관행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법적 근거 없이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기부금 등을 뜯어내는 ‘준조세 관행’이 사라지지 않으면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경쟁력은 더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경제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기업을 ‘권력의 사금고’로 여기는 풍조를 일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의 조속한 진실 규명을 통해 기업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 경제 회생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이번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사건을 보면 압박에 못 이겨 경영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까지 기부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기업들이 어떤 목적을 위해 갖다 바친 뇌물이라기보다는 강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헌납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기업들에 ‘공식 사과’를 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강제 모금 관행이 근절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재계는 주목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사건의 핵심은 권력과 비선 실세들이 대기업의 약점을 핑계로 협박·공갈하거나 재단기금 모금을 압박하는 형식으로 자의반 타의반 돈을 뜯어내고, 기업들은 권력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보험’을 들거나 이권을 챙겨온 데 있다. 현재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53개 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모금의 강제성에 대한 수사를 진행 중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기업들이 낸 대표적인 준조세로는 미르·K스포츠재단 이외에도 청년희망펀드(880억 원), 지능정보기술연구원(210억 원), 한국인터넷광고재단(200억 원), 중소상공인희망재단(100억 원), 창조경제혁신센터 할당 등이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흔히 준조세로 불리는 이런 돈이 많아지면 당연히 사회적으로도 불투명해지고 기업들도 위축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회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정감사에서 대기업 그룹 회장 등 기업인들을 줄소환해 문제가 됐는데 기업들의 대관 업무 관계자들이 얼마나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잘했는지가 소환 기업인 선정 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게 현실이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정보기술(IT)학과 특임교수는 “이번 기회에 준조세 금지에 관한 법률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야당 역시 기업이 정부의 사금고로 전락한 사태를 보고 비판에 나선 만큼 지금이 법 제정의 적기”라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많은 정부가 기업을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았지만 기업의 돈을 받아 정권 유지를 한 형국”이라며 “지금까지 법과 제도가 없어 정치권에서 부당한 요구를 한 게 아니라 알면서도 했던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유회경·정충신 기자 yoolog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