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경기 의왕시 삼동 현대자동차그룹 중앙연구소에서 거동이 불편한 한 실험자가 의료용 웨어러블 로봇 ‘에이치멕스(H-MEX)’를 착용하고 계단을 오르고 있다. 현대자동차 제공

- 경기 의왕 ‘현대車 중앙연구소’를 가다

재활·의료용 웨어러블 로봇
2020년 상용화·보급 추진
등에 짐 지고 뛰어도 ‘가뿐’

리튬이온 대체할 ‘리튬공기’
기존 배터리의 2배 주행 가능
토요타·BMW와 개발 경쟁

미래 지배할 기술 방향 설정
에너지·소재 등 다방면 연구

10월 21일 찾은 경기 의왕시 삼동 현대자동차그룹 중앙연구소.

20층 로봇제어평가실에 들어서자 하반신에 재활기구처럼 생긴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착용 로봇)’을 장착한 하태준 주임연구원이 실험실 한구석에 놓인 러닝머신 위를 최고시속 12㎞의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언뜻 뜀박질이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로봇이 오히려 신체 움직임을 도와주는 탓에 맨몸으로 뛰는 것보다 힘이 덜 든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등에 20㎏ 무게의 짐을 얹어도 로봇이 하중을 받쳐줘 무겁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한다.

현대차가 개발한 웨어러블 로봇은 교통사고 등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환자가 사용할 의료용 로봇 에이치멕스(H-MEX)와 무거운 짐을 나르는 산업용 로봇 에이치웩스(H-WEX), 신체능력을 끌어올려 주는 보행용 로봇 에이치렉스(H-LEX) 등 3종이며 7대의 시제품이 제작돼 연구개발에 활용되고 있다.

현동진 인간편의연구팀 파트장은 “2020년까지 의료용 로봇을 먼저 상용화해 하반신 마비 환자들에게 보급할 예정”이라며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임상시험 승인을 받고 실험 직전 단계”라고 말했다.

연구소 메인 건물을 나와 바로 앞 시험동 1층의 ‘드라이룸’ 문을 열자 흰 실험용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리튬이온을 대체할 ‘리튬공기 배터리’ 개발을 위한 충·방전 실험이 한창이었다. 리튬을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발생시키는 리튬공기 배터리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이론상 에너지 밀도가 2배 이상 높아 전기차 배터리로 개발되면 같은 용량으로 2배 이상의 거리를 달릴 수 있다. 현재 토요타와 BMW, IBM 등이 현대차와 함께 리튬공기 배터리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오는 2025년까지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리튬공기 배터리에 앞서 현재의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해 리튬이온에 비해 에너지 밀도가 1.5~1.7배가량 높은 전고체 배터리 역시 개발 중이다.

이호택 환경에너지연구팀 파트장은 “차세대 전고체 배터리 개발이 완료될 경우 기존 아이오닉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용량으로 300㎞를 달릴 수 있고 리튬공기 배터리는 500㎞까지 주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양연구소(1996년)와 환경기술연구소(2005년)에 이어 2009년 설립된 현대차그룹 중앙연구소는 당장 눈앞의 먹거리가 아니라 미래 기술 진화 방향을 예측하고 선행 기술 연구를 담당한다. 중앙연구소에서 선행 연구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남양연구소에서 실제 양산되는 차에 적용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다듬는 식이다. 이 때문에 자율주행차 개발에서부터 웨어러블 로봇, 배터리, 소재 등 언뜻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광범위한 영역의 연구가 진행된다.

현재 이 연구소의 연구 분야는 환경·에너지, 지능형 안전, 인간 편의, 신소재 등 크게 네 가지 분야로 나뉘어 있다. 먼저 환경에너지연구팀은 미래 친환경차 경쟁력을 좌우할 차세대 배터리를 비롯해 태양전지와 연료전지 촉매, 전력반도체 등의 개발을 통해 고밀도·고효율 전기에너지의 변환, 저장 및 제어 장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인간편의연구팀은 인지기술, 판단기술, 제어기술, 인간·생체공학에 대한 연구를 통해 웨어러블 로봇과 신개념 자동차 기기, 인체 기반 설계 등의 개발 및 검증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알루미늄은 물론 신개념 고분자 소재와 다종재질 등 경량 소재 연구와 열 제어 기능 소재, 고열전도 나노유체, 열전 소자, 바이오 소재 등 나노 소재 연구는 신소재연구팀 몫이다. 지능형안전연구팀은 현대차그룹 내에서 최근 미래차의 화두로 떠오른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운전자 관련 인식과 주행 상황 인식, 센서 기술, 차량제어 기술 등을 융합시켜 2020년까지 고도 자율주행, 2030년까지 완전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임태원 중앙연구소장(전무)은 “중앙연구소는 10년 뒤 미래 자동차시장의 변화에 따른 기술 방향을 설정하고 테스트하는 일종의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왕 =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