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누구의 그림인가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미인도(왼쪽 사진)와 생전의 천경자 화백. 천 화백은 “자기 자식을 몰라보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미인도는 위작’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 천경자 僞作 그렸다던 권춘식 否認

“방송서 미인도 그려보며
4호도 안되는 작은 크기
낯설고 생소… 어려움 느껴
내 그림 아니다 확신가져”

前 현대미술관 학예실장
“權, 1984년作이라 자백
미술관 입수가 1980년
당시도 신빙성 없었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자신이 그렸다고 주장해온 권춘식(69) 씨가 “미인도는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면서 기존의 주장을 번복하며 미인도 위작 시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지난해 천 화백 별세 이후 ‘미인도’ 위작 논란이 다시 불거진 가운데, 1999년 검찰 미술품 위작 수사과정에서 “미인도를 본인이 그렸다”고 밝힌 뒤 이후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으며 ‘위작 시비’ 논란의 중심에 있던 권 씨는 2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 다시 그려 보았는데 힘들었다. 미인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린 것 같지 않다”고 고백했다.

천 화백의 별세 소식이 지난해 10월 뒤늦게 알려진 이후 유가족은 계속해서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해왔고, 지난 연말 국회도 ‘천경자 미인도의 재감정 요청의 건’을 통과시켜 놓은 상태다.

특히 유족은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으로 소송을 준비 중이었다. 이 같은 움직임에 큰 힘을 실어준 것이 권 씨가 본인이 미인도를 그렸다는 주장이었다.

반면에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주류 미술계에서는 1991년 처음으로 위작 시비가 일어났을 때 진품으로 결론 난 한국화랑협회의 감정 사실을 근거로 진품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권 씨가 자신의 위작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시인하면서 천 화백의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주장은 이제 유족과 일부 미술계 인사들만의 주장으로 남게 됐다.

2일 권 씨는 본보 기자에게 자필로 쓴 진술서를 만들어 건네며 “참담했던 마음으로 경솔했던 점 깊이 사죄드린다”며 “1999년 당시(검찰에서) 미인도 위조 여부 확인을 요구받았을 때 아무런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미인도를 내가 그렸다가 아니라 내가 그린 것 같다’고 했어야 옳았을 것 같다”고 밝혔다.

권 씨는 “당시 수사검사였던 최순용 검사에게 조사받으며 혹시 감형 받을 수도 있다는 기대로 미인도 복사본을 보여주며 확인을 요청했을 때 우물쭈물했고, 그래서 사건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에 권 씨는 미인도를 본인이 그렸다는 확신을 못해 2001년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에 찾아가 미인도 원본을 보고 확인하려 했을 때 보여주지 않아 무산됐다고 말했다.

권 씨는 지난 2월 SBS스페셜에서 ‘미인도 위작 여부’를 가리기 위해 제작진의 부탁으로 미인도를 그려보며 “이 작품은 내가 그린 것 같지 않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권 씨는 “하루 만에 미인도를 그리기는 했지만 어딘지 낯설고 생소했으며 표현에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미인도처럼 4호도 안 되는 작은 그림은 그린 기억이 전혀 없다. 확실히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동안 일관되게 천 화백의 미인도는 진품이라고 주장해온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권춘식의 자백이 1999년 있었고, 자신이 그렸다는 제작연도가 1984년이었는데, 미술관에 작품이 입수된 연도가 1980년인 점에서 애초부터 권 씨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었다”며 “뒤늦게나마 권 씨가 ‘미인도를 자신이 그린 것이 아니다’고 털어놓고, ‘천경자 선생의 진작이 분명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아 다행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